11일 새벽 5시 울산 남구 야음동의 한 인력시장에 구직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중 3분의 1정도는 일감을 구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들은 9시가 돼 가자 “오늘도 공쳤네”라며 뿔뿔이 흩어졌다.
한 일용직 근로자는 “새벽 추위보다도 일이 없는 고통이 더 춥다”며 지역 경기불황에 따른 고충을 토로했다.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일을 구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일할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난감하고 미안할 때가 많다”며 “일자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고 말했다. 이는 울산이 현재 체감하고 있는 불황의 단면이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에서 조선기자재를 생산·납품하는 A사는 매년 직원들에게 지급하던 명절 떡값을 올해는 줄이기로 했다.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내수판매가 급감한데 이어 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자금사정이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석유화학과 중공업의 수주 부진과 수출 감소로 인한 실적 악화 여파가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 중소기업들에까지 미치면서 자금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1인당 지역총생산(GRDP) 전국 1등, 경기가 가장 좋은 도시, ‘부자 도시’ 등으로 불리던 울산이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부문 주력산업이 흔들리면서 추락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수출 1000억 달러 달성을 자축했던 울산의 모습은 지금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울산의 산업구조를 보면 제조업 69.0%, 서비스업 23.9%, 건설업 4.3%로 제조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지역을 떠받치는 대표기업들의 영업 실적 부진은 곧 지역경제 전체가 휘청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울산지역 실업자수 증가율이 20%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최근 발표된 ‘2014년 동남권 고용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울산지역 실업자 수는 1만5000명으로 전년보다 3000명(28.0%)이나 늘어났다. 이에 따라 지역 실업률은 2.7%로 전년보다 0.6%P 상승했다.
경제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민 삶의 바로미터인 전기 및 도시가스의 요금 체납도 급증하고 있다. 2013년 12월∼2014년 9월 울산지역 전체 도시가스 공급가구(55만가구) 가운데 두달 이상 도시가스요금을 체납한 가구는 1만8645가구(3.39%)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제한된 전기를 공급받고 있는 가구도 3000여 가구에 달하고 있다.
불황의 여파는 유통가도 마찬가지다. 울산은 그동안 전국적인 불황에도 그나마 명절 특수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던 지역이었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지역 대기업들이 전례 없는 불황에 허덕이게 되면서 오히려 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지역 대기업들이 명절마다 앞 다퉈 구매해줬던 ‘전통시장 온누리 상품권’에 대한 문의도 뚝 떨어졌다. 지금까지 온누리상품권을 단체로 구매했다는 소식은 현대자동차가 유일하다.
울산 불황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 지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울산은 한국경제의 주축인 제조업 핵심 업종이 포진한 심장 같은 곳이다. 이런 점에서 울산지역 업계의 불황은 작게는 수출 경기, 크게는 우리 경제의 부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분석이다.
울산=글·사진 조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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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치솟고 명절 특수 실종… ‘제조업의 심장’ 울산이 심상찮다
입력 2015-02-12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