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월북시인’ 이용악 전집 나왔다

입력 2015-02-12 02:04

‘북방의 시인’ 이용악(1914∼1971·사진)은 백석(1912∼1996)과 함께 1930년대 후반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양두마차다. 북방의 호방함을 품은 담백한 서정과 당대 민초들의 힘겨운 현실을 직시한 그의 시는 일제강점기 모더니즘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월북 후 북한 시단에서의 활동 경력 때문에 문학사에서 잊혀져야 했다.

한때 금기시됐던 이용악의 거의 모든 작품이 수록된 ‘이용악 전집’(소명출판 펴냄)이 출간됐다. 시집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등 광복 이전에 발표한 작품 위주로 시전집이 나온 적은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월북 이후 발표한 시들과 유일한 산문집 ‘보람찬 청춘’(1955)을 비롯한 산문, 좌담자료까지 망라해 이용악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전집이 나오기는 처음이다.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상무(시인), 이경수 중앙대 국문과 교수(평론가), 이현승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시인) 등 3명의 연구자가 지난 2년간 작업한 결과다.

가장 큰 특징은 북에서 활동한 이용악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붉은 충성을 천백배 불태워’ ‘우리 당의 행군로’ ‘피값을 천만배로 하여’처럼 제목에서부터 어용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들이 가감 없이 수록됐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곽 상무는 11일 “우리는 온전한 이용악이 아니라 반쪽짜리 이용악에 대해서만 알아왔다. 작가론적인 관점에서도, 문학사적인 관점에서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에서 쓴 작품들까지 같이 묶어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북 경성 출신으로 6·25전쟁 때 월북한 이용악은 1968년 공화국 창건 20주년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내각 부수상까지 지낸 홍명희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한설야처럼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