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프 비전센터는 서울 동대문시장 인근 을지로 44길 골목 끝에 있었다. 허름한 3층짜리 건물 외벽에 예전 명칭인 ‘동대문 비전센터’ 간판이 보였다. 1·2층에는 식당과 술집이 들어서 있는 터라 비전센터라는 이름은 낯설어 보였지만 평일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지난 5일 들른 센터에서는 특별한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뉴라이프 비전센터 확장 감사예배’. 머리가 희끗한 남녀 어르신들 사이로 외국인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예배 참석자 80여명 중 대다수는 ‘뉴라이프 미션’(회장 이정우 장로) 회원들이다.
뉴라이프 미션은 2년 전 이맘때 ㈔나섬공동체(대표 유해근 목사)가 설립한 ‘뉴라이프 동대문선교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은퇴한 뒤 선교 사명을 품고 새 삶(뉴라이프)을 시작하는 크리스천 평신도들이 동대문시장을 무대 삼아 선교·봉사 활동을 펼치는 선교단체다.
“동대문시장 일대는 외국인 유동인구만 하루 평균 1만명에 달합니다. 관광객과 해외 바이어들, 상가나 식당 노동자들까지 외국인들이 붐비는 곳이죠. 이곳이야말로 선교의 땅끝입니다.” 유해근 목사의 설명이다.
초창기 회원은 20명이었다. 이들은 센터 설립 초창기부터 이 건물 3층에서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10여명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틈틈이 법률·의료·취업 상담도 병행했다. 회원 수가 80명, 이들이 섬기는 외국인들이 30여명으로 불면서 교실과 모임 공간이 부족해지자 4층 확장을 결정했다.
“꼭 2년 만에 부흥의 기쁨을 누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사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센터 섬김이’ 한순옥 목사의 설명이다.
선교회 회원들은 나섬공동체가 마련한 10주 과정의 ‘뉴라이프 비전스쿨’ 수료생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선교사로서 갖춰야 할 소양과 기초지식을 배우고, 국내외 단기선교 실습도 갖는다. 현재 6기까지 배출됐고 내달 시작되는 7기 회원까지 포함하면 올 상반기 중 회원 100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회원들의 면면은 전직 교사, CEO, 회사원, 자영업자, 주부 등 다채롭다. 평균 연령은 70대 초반으로 이들의 풍부한 인생 경험은 또 다른 자산이다. 회원들은 저마다 한국어교육이나 상담 과정, 침술 봉사 자격증 등을 별도로 취득해 선교·봉사에 활용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이들이 섬기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러시아 몽골 베트남 중국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등 10개국이 넘는다. 센터에서 만난 파키스탄 출신의 히라(30·여)씨는 같은 나라 출신인 친구의 딸(8)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려고 이곳을 찾았다.
5개월째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반터(34·동국대 대학원)씨는 “지난해 여름 전단을 보고 왔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의 입소문으로 이곳을 드나드는 외국인 유학생만 6명이다.
반터씨를 가르치는 김성숙(65) 권사는 “꼭 아들을 대하는 것 같아 만나는 일이 즐겁다”고 웃으며 말했다. 보성여중 교장 출신의 교육팀장 송대량(74) 집사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이곳 시장통을 지날 때마다 ‘아, 내가 일할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블라디미르, 오트고, 이라지벡, 아브라함, 노르란, 마리나…. 사무실 입구 게시판에는 한국어 수강 시간표와 함께 외국인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사무실 벽 현판에 쓰인 ‘동대문이 땅끝이다’라는 문구와 묘한 조화를 이뤘다. 뉴라이프 미션을 태동하게 한 유해근 목사는 시각장애로 앞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선교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누구보다 밝은 것 같았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동대문은 열방 선교의 땅끝”… 은퇴한 평신도 80명 선교사로 인생 2막
입력 2015-02-12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