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승욱] 잊혀질 권리 어디까지 보장할까

입력 2015-02-12 02:04

최근 국민일보에 접수된 기사 정정 및 삭제 요청 중 특징적인 게 두 건 있었다. 하나는 성추행 사건으로 교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교수가 정정보도를 요청한 경우였다. 이 교수는 변호사를 선임한 뒤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다른 하나는 임원의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한 기업이 과거에 나갔던 기사를 온라인에서 삭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기업은 인터넷 기사삭제 서비스를 대행하는 전문업체를 통해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두 건 모두 국민일보 지면에 실리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서비스된 ‘온라인기사’다.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기존 플랫폼보다 인터넷과 SNS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소비되는 뉴스의 비중이 점점 높아가면서 온라인 기사의 수정과 삭제 여부는 점점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통일된 원칙과 절차가 미비하다.

온라인과 지면은 기사성격 달라

법에 명시된 언론피해 구제방식이 종이에 인쇄된 ‘지면기사’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정점에 있는 이 제도는 수정·삭제가 불가능한 지면기사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모델이다. 이미 독자에게 배달된 신문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정정보도’ 또는 ‘반론보도’라는 기사를 다음날 신문에 싣는다.

성추행 사건으로 징계위에 회부된 교수는 기존 제도를 활용했다. 그의 주장은 “징계위에서 결론도 나기 전에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만 기사에 담았다”였다. 그래서 요청한 대로 본인의 주장을 담은 ‘반론 기사’를 작성해 온라인으로 전송했다. 지면기사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된 것이다. 기사에 잘못이 없더라도 충분한 반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이 방식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온라인 기사는 수정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기사수정을 요청할 경우 소송을 불사한다는 원칙을 정했지만 온라인기사에 관한 한 기존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두 번째는 요즘 이슈가 된 ‘잊혀질 권리’를 주장한 경우다. 기사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그 기사를 볼 수 없게 해달라는 것이다. 지난달 말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국민일보 창간과 동시에 시작한 기획시리즈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등장한 주인공이 자신을 다룬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했다. 어렸을 때 힘들었던 이야기를 어른이 된 지금까지 보는 게 마음 아프다는 말에 내부 논의를 거쳐 기사를 삭제했다. 이 경우 ‘알권리’보다 ‘잊혀질 권리’가 중요하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피해구제 기준과 절차 마련해야

그렇다면 잊혀질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살인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기사 삭제를 요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만약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한다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사를 모두 삭제해야 합니까?”

기사삭제를 요청한 기업은 “당시 사건 정황을 보도한 기사가 계속 검색돼 영원히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은 우리 사회에서 계속 발생하는 심각한 이슈다. 개인적으로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포함해 이 사건의 모든 상황이 끊임없이 연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차 피해 방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케이스인데 무작정 ‘잊혀질 권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나 모든 언론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과 절차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지면기사와 성격이 전혀 다른 온라인기사를 위한 원칙이 필요하다.

고승욱 온라인뉴스부장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