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영화계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5-02-12 02:20

영화 ‘명량’이 1700만 관객몰이로 최다 흥행 기록을 세운 데 이어 ‘국제시장’이 1300만 돌파로 흥행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기록은 국내 영화계의 고질병인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에 기반을 둔 측면이 없지 않다. 두 영화 모두 극장 체인을 가진 CJ E&M이 투자·배급했다.

‘명량’은 전국 4000여개 상영관 가운데 1000개 이상을 확보했고, 개봉 두 달째인 ‘국제시장’은 400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역시 CJ E&M이 투자·배급한 ‘쎄시봉’은 700여개 상영관을 잡았다. 이런 가운데 상영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작은 영화들은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현실이다.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개봉 초반 극장을 잡지 못했다. 관객이 보지 않으면 막을 내리는 것은 상업극장의 생리이지만 상영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영화가 한둘이 아니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대통령에게 대기업 수직계열화의 폐해를 호소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영화계 곳곳에서 마찰음도 들려온다. 지난달 23일 부산시 고위 관계자가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우회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부산시가 실시한 BIFF에 대한 감사 결과를 근거로 초청작 선정 관련 규정 위반 등을 지적한 것이다. 이를 두고 영화계는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상영금지 요구를 거부하고 지난해 부산영화제가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영화계는 반발했다. 독립성이 최우선이어야 할 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영화단체 12곳은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성 지키기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부산시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분명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오는 등 국제적 망신을 샀다.

또 영화 진흥에 힘써야 할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제 상영작 사전심의를 추진하다 반발을 샀다. 현재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29조 1항에 근거한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영진위나 정부, 지자체가 주최·주관·지원·후원하는 영화제 등의 경우 영화상영등급을 받지 않은 영화도 상영될 수 있다. 영진위는 등급면제 추천권을 소위원회를 거쳐 최고의결기구인 9인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내용으로 개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위는 “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 제도를 오·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고자 실무적으로 관련 규정과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화계는 이 규정이 개정되면 정권 비판적인 영화 등 이른바 ‘입맛에 맞지 않는’ 작품의 상영을 제한하는 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사전검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최근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제천음악영화제,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방문을 받고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밝혔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영진위의 ‘201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산업 매출은 2조276억원으로 사상 처음 2조원을 넘었다. 그러나 투자 수익률은 0.3%로 전년도(14.1%)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고, 한국영화 총 관객도 2013년보다 15.4% 줄어든 1억770만명이다. 영화계의 화려한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이다. 영화산업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위해 구조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