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무리수’ 법원에 제동 걸렸다

입력 2015-02-11 02:30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에 무리하게 4300억원의 담합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소송에서 패소해 과징금 환급은 물론 약 300억원의 이자까지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현대오일뱅크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에쓰오일도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동일한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현대오일뱅크(753억원)와 에쓰오일(439억원)은 공정위에 납부한 과징금 1192억원을 모두 돌려받게 됐다. 동일한 문제로 과징금 1356억원을 납부한 SK이노베이션도 12일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 있어 정유업체들이 돌려받는 환급금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패소한 공정위는 업체가 납부한 과징금에 더해 거액의 이자까지 물어줘야 한다. 결국 공정위가 무리하게 과징금을 부과해 정유업체에 경영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민 세금까지 낭비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은 과징금 이자로 각각 80억∼90억원, 50억∼60억원씩 돌려받을 예정이다. 대법원에서 같은 판결이 날 경우 SK이노베이션이 돌려받을 이자는 140억∼150억원에 이른다.

공정위는 2011년 12월 국내 4개 정유사들이 암묵적 합의 하에 주유소가 공급사를 쉽게 옮기지 못하도록 해 소비자가격 인하를 막았다며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이후 GS칼텍스 1772억원, SK이노베이션 1356억원, 현대오일뱅크 753억원, 에쓰오일 439억원 등 총 43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GS칼텍스는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점이 감안돼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나머지 정유 3사는 공정위가 무리하게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반발했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업 소송은 갈수록 늘고 있다. 국민일보가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을 통해 입수한 ‘공정위 행정처분에 대한 소송 제기 현황’을 보면 2010년 48건이던 소송은 해마다 증가해 2012년 88건으로 늘었다. 2013년 55건으로 잠시 줄었다가 지난해 120건으로 다시 급증했다.

공정위가 소송에 져서 환급하는 금액도 늘고 있다. 2010년 공정위는 1건 패소, 8건 일부승소를 통해 업체에 287억1000만원을 돌려줬다. 2011년에는 패소 16건, 일부승소 8건으로 1172억9000만원을 물어줬다. 2012년에는 환급 금액이 9억900만원으로 급감했지만 최종 판결까지 통상 3년 정도 걸리고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 32건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공정위의 환급액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