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종합검사 폐지… ‘사사건건 경영 간섭’도 없앤다

입력 2015-02-11 02:05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감독 쇄신 및 운영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가 2017년부터 폐지된다. 금융권의 불건전 영업관행을 정조준할 금융혁신국이 신설되고, 배당이나 이자율 등 금융사 경영에 대한 당국의 간섭은 최소화될 예정이다. 대신 중대한 위법행위가 적발되면 영업정지나 최고경영자(CEO) 해임을 권고하는 등 제재 강도는 높아진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융감독 쇄신 및 운영방향’을 발표했다. 진 원장은 “금융사의 자율과 창의를 제약하지 않으면서 엄정한 금융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검사 및 제재관행을 혁신하겠다”며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금융사 검사와 제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종합검사 단계적 폐지, 금융혁신국 신설=이번 쇄신방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2∼3년 주기로 해오던 종합검사를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종합검사를 빌미로 금융사의 모든 업무를 일일이 들여다보는 ‘투망식 검사’ 대신 문제될 소지가 있는 부분 중심의 선별검사로 전환하겠다는 게 금감원의 구상이다. 이런 변화로 검사 관행을 바꿔 최근 3년간 평균 38.5회에 달했던 종합검사를 올해 21회, 내년 10회 안팎으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다. 종합검사의 공백을 감안해 경영실태평가 등 대체 제도가 안착되는 상황을 고려해 2017년부터 폐지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종합검사 비중이 크다보니 경영실태평가는 형식적인 계량 평가에 그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제재를 위한 검사가 아니라 해당 금융사의 경영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경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 경영에 ‘담임선생님’처럼 간섭하는 관행도 사라진다. 금감원은 배당이나 이자율 등에 대해 국제기준을 고려한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하는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대신 검사에서 중대한 규정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기관경고나 문책경고를 넘어 영업정지, CEO 해임권고 등 제재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전임 최수현 원장 시절 신설돼 ‘금감원의 중수부’로 불렸던 기획검사국은 금융혁신국으로 바뀐다. 진 원장은 “다른 검사국과 중복되는 기능을 넘기고, 금융혁신국에서 금융권 적폐 문제를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 적폐로는 신규계약 상품판매에만 열을 올리면서 계약해지는 어렵게 하는 불건전 영업관행, 매수의견 위주의 증권 애널리스트 보고서, 보험 불완전판매, 카드사의 일방적인 부가서비스 제공 중단행위 등이 꼽힌다. 검사에 치중하기보다 금융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영업관행을 바로잡으며 최 전 원장과 차별화하겠다는 진 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등의 금융사기, 불법 사금융, 불법 채권추심, 꺾기, 보험사기를 ‘5대 민생침해 불법 금융행위’로 규정해 적극 대응하고, 금융사의 각종 애로사항을 담당하는 전담팀도 감독총괄국에 두기로 했다.

◇원장 취임 때마다 시장친화적 검사·감독 강조했던 금감원, 이번엔 달라지나=진 원장이 밝힌 검사·감독 쇄신방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 관행을 시장친화적이고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건 금감원의 오랜 ‘레퍼토리’였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였다.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감독 당국 수장이 된 김종창 전 원장은 ‘3프렌들리론’을 내세웠다. ‘마켓(시장)프렌들리, 비즈니스(기업)프렌들리, 컨슈머(소비자)프렌들리’로 감독관행을 바꾸겠다는 의지였다. 2011년 취임한 권혁세 전 원장은 “의례적 검사를 지양하고 제재보다 컨설팅으로 접근하겠다”고 했고, 최 전 원장도 “종합검사보다 기획·테마검사로 기동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반복해서 추진했던 이런 방침들은 각종 금융사고를 겪으며 흐지부지되기 일쑤였고, 금감원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지난해 초 터진 카드사 정보유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핀테크(금융+IT) 활성화 방안으로 금융보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금감원의 쇄신책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외부 사고가 발생하면 다시 제재가 강화되면서 쇄신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당국이 인내심을 발휘해 처음 밝힌 원칙을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