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어, 너므(너무) 아름다워요. 완벽하게 말하고 싶은데 어려워. 문법, 말하기.”
베트남 출신의 미국인 유학생 쿠완 응웬(24)씨가 떠듬떠듬 한국어 사랑을 고백했다. 마주앉은 임계희(63·여)씨는 밝은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 서울 한남동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3층에선 ‘SAY(Seniors and Youth)’ 2기 노인 다섯 명과 이국 청년 다섯 명이 둘러 앉아 한국어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SAY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교양수업 ‘현대 한국어와 문화’를 수강하는 학생 8명과 60세 이상 한국 노인들이 일대일로 1주일에 한 번 화상통화를 통해 한국어 회화 수업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린스턴대를 휴학하고 이 복지관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조용민(24)씨가 고안했다. ‘노인과 젊은이가 한국어로 말한다’는 뜻을 프로그램 이름에 담았다.
지난해 9∼12월 1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과 학생들은 소비생활, 외모지상주의, 결혼문화, 세대차이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학생들에게는 한국어 연습 기회가, 노인들에게는 ‘소통’의 기회가 된다. 입소문이 퍼지자 2기 선발에 32명이 지원했고, 그중 4명이 2기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됐다.
이날은 2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노인들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한국어 회화 수업 ‘실전 연습’을 하는 자리였다. 외국인들과 짝을 이뤄 20분씩 두 차례 대화를 나눴다. 응웬씨는 “제 한국어 이름은 hero, 여눈? 염웅? 이에요”라며 휴대전화를 꺼내 지하철 광고 속 글자 ‘영웅’을 찍은 사진을 임씨에게 내밀었다. 대화 주제는 ‘한국문화’였다. 응웬씨는 “언어와 음식이 맘에 든다. 김치를 좋아하는데 제일 맛있는 건 신김치”라며 신난 표정으로 김치 이름을 줄줄 읊었다.
한국계 혼혈 미국인인 소냐 스완슨(26·여)씨와 짝꿍이 된 이기용(66)씨는 “한국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예쁘고 이야기를 조리 있게 잘한다”고 평가했다. 스완슨씨는 “단어를 배우고 바로 예문을 쓰는 대화 방식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은퇴 후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SAY에 도전했다. 이인욱(64)씨는 1기에 이어 2기로도 활동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서 30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그는 행복한 노후를 고민하다 ‘노인복지’를 공부하기도 했다. 이씨는 “SAY를 통해 마음이 열려 공연장 시니어 가이드로도 일하고 있다”며 “만족스러운 제2의 삶을 산다”고 활짝 웃었다.
37년간 중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다 7년 전 퇴직한 양은용(69·여)씨도 1기 때부터 참여하고 있다. 지난 학기엔 한국인 어머니를 둔 재미 중국인 우국강(22)씨와 짝을 이뤘다. 그는 “할 일이 생기니 생기가 돌고 수업이 기다려졌다”며 “나를 할머니라 부르며 내가 알려준 실생활 ‘지혜’를 활용하는 국강이가 사랑스러웠다”고 말했다.
1기 때 한인 교포 정주리(21·여)씨를 맡았던 안영태(73)씨도 2기로 다시 참여했다. 그는 “우리 손녀(정주리씨를 지칭)가 다른 학생보다 한국어를 잘해서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학생이 아닌 조카, 손주로 여기니 대화 소재가 확 늘었다”고 말했다.
SAY 2기의 본격 수업은 설 연휴가 끝나는 23일부터 시작된다. 박민영 사회복지사는 10일 “프린스턴대 학생뿐 아니라 결혼이주여성, 다문화 가정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회화 수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수민 기자 서희수 인턴기자 suminism@kmib.co.kr
은퇴 노인·벽안의 젊은이, 한국어로 소통하다
입력 2015-02-11 02:42 수정 2015-02-11 0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