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美의회 연설

입력 2015-02-11 02:10

1954년 7월 28일 오후 4시30분 미국 워싱턴DC 한복판 국회의사당. 이승만 대통령이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기 위해 입장했다. 리처드 닉슨 부통령 겸 상원의장과 조지프 마틴 하원의장을 비롯한 의원, 대법원장, 외교사절 등이 일제히 기립해 박수로 환영했다. 마틴 의장으로부터 ‘불굴의 자유전사’로 소개받은 이 대통령은 프린스턴대 박사 출신답게 유창한 영어로 40분간 연설했다.

그는 “자유세계는 공산세계를 타도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한국 재무장론과 북진통일론을 역설했다. 6·25전쟁 정전을 밀어붙인 미국을 겁쟁이라고 비판한 이 대통령은 “자유를 추구하는 싸움에 한국이 선봉을 맡겠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연설 내용이 귀에 거슬렸지만 동양에서 온 79세 노정치인에게 33번의 박수로 격려했다.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미 의회에서 연설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미 의회에서 연설한 해외 정상 및 주요 인사는 1874년 칼라카우아 하와이 국왕 이후 114명이라고 한다. 영국과 프랑스 정상이 각 8회씩으로 가장 많으며, 멕시코 이스라엘(7회), 한국 이탈리아 아일랜드(6회), 독일(5회), 인도(4회), 호주 캐나다 아르헨티나(3회) 순이다.

오는 4월 말 미국 방문을 추진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의회 연설을 희망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지금까지 일본 총리는 한 번도 연설한 적이 없다. 진주만 침공 등 과거사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이 기회를 주지 않는 이유란다. 미국은 이 문제를 다룰 때 일본이 군 위안부 불인정,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이웃 나라를 향해 끊임없이 과거사 도발을 하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반성에 인색한 전범국 총리를 국제정치 무대의 중심에 세울 순 없지 않는가.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