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극한 직업, ‘농구 대통령’도 하야 시켰다… 프로스포츠 감독 자리는

입력 2015-02-11 02:35
허재 전 전주 KCC 감독의 지난 시즌 사진(왼쪽)과 올 시즌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불과 1년 새 눈에 띄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하얗게 변한 게 눈에 띈다. 연합뉴스·KBL 제공

누가 프로스포츠 감독을 영예로운 자리라고 했나. 이들이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언제 사임하게 될지 모르는 파리 목숨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극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프로스포츠 감독의 모습은 물 위에선 화려하지만 물 아래에선 숨 쉴 틈 없이 다리를 젓는 백조와 같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화려함 이면에는 남모를 아픔이 자리를 잡고 있다.

‘농구 대통령’ 허재(50) 전 전주 KCC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장(名將)이었다. 2005년부터 KCC를 이끌며 10시즌 동안 팀에 두 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안겼다. 구단과의 관계도 끈끈해 종신 감독이나 차기 단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성적부진과 주전들의 잇단 부상으로 인한 압박은 ‘농구 대통령’도 피하지 못했다. 올 들어 부쩍 의기소침했고 흰 머리도 눈에 띄도록 늘어났다. 스트레스를 경기 후 소주 한 잔으로 털었지만 결국에 ‘하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농구 부산 KT 전창진(52) 감독은 과로로 입원까지 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전 감독은 스트레스를 하루 세 갑 이상 피우는 줄담배로 해결했다. 그래도 6강 전쟁터에서 선수들을 지휘하기 위해 며칠 만에 병상에서 일어나 코트에 나섰다. 전 감독은 “감독은 우승해야 힘이 생긴다”며 “시간은 흘러가는데 붙잡지 못하고 있다. 내가 참 우스워 보이는 현실이 싫다”고 토로했다.

프로배구 LIG 손해보험 문용관(54) 감독도 성적부진이라는 고충에 시달리다 지난주 현장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구단 관계자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면서 “너무나 심신이 지쳐 있어서 더 해달라고 말하기도 미안했다”고 전했다.

아시아의 거포로 이름을 날렸던 프로배구 우리카드 강만수(60) 총감독은 감독직 사퇴 전 10연패에서 탈출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설움이 폭발한 듯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배구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감독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린다. 프로야구 김성근(73) 한화 이글스 감독과 김시진(57)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증에 시달렸다. 김인식(68) 전 한화 감독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프로스포츠 감독의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한 프로농구 감독은 10일 “감독은 성적에 무한 책임을 진다”면서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계약기간이 있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지난 해 말부터 현재까지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 감독 중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사령탑은 무려 15명이나 된다. 프로야구가 5명, 프로축구가 6명, 남녀 프로농구가 2명, 남녀 프로배구가 2명이다. 농구가 배구가 시즌 종착역으로 향하면서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감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