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나는 홍성교도소 보안과 소속 경비교도대(경교대) 소대장 직임을 받았다.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경교대는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 등 법무부 교정시설에서 군복무를 하는 부대와 그에 속한 대원을 말한다. 교정시설 경비를 맡은 군인으로 보면 되겠다. 나에겐 매우 생소했다. 사실 재소자 선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처음엔 실망을 많이 했지만 또 다른 선교의 길을 열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군선교였던 셈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경교대 대원들이 모두 자식처럼 보였다.
대원들은 육군 논산훈련소와 예비사단에서 훈련을 마친 후 법무부로 전입된다. 이들은 다시 법무부 연수원에서 6주간 훈련을 마치고 각 교도소로 배속 받아 2년을 복무한다. 그때까지 나는 군선교에 대한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무엇이든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신병이 오면 그의 거주지 주소지와 가까운 교회에 연락해 주보와 청년부 소식을 받아볼 수 있게 했고 서신왕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가까운 거리는 오토바이를 이용해 찾아다녔다.
간혹 거절당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전도했다. 전역하는 대원들에겐 직접 고향에 있는 교회로 찾아가 등록 절차를 밟아주었고 신앙생활을 잘 하라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의 새로운 신자가 늘어날 때마다 벅찬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당시 교도소 안에는 교회가 없었다. 이 때문에 경교대 대원들은 외부 교회를 이용했는데 한 번 나가려면 3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을 유지하기에는 좋은 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무반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이마저도 눈치를 봐야 했다. 고심 끝에 마련한 게 노천예배였다. 경교대 운동장 옆 공터에 둘러앉아 찬양 예배를 드리고 생일잔치나 진급자 축하예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천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자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말했다. 어쩌면 엉뚱한 행동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간절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몸에 전율이 흘렀다. 입은 얼얼했고 몸이 뻣뻣해오는 느낌과 함께 평안이 밀려왔다. 전신은 땀으로 축축했다. 나는 대원들과 더 열심히 통성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정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말 그대로 기적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예배를 무사히 마쳤고 대원들은 모두 내무반으로 복귀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모세의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은 기적이 성경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기적은 이 시간에도 일어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건은 훗날 경교대 교회당을 건축하는 예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바로 그 노천 자리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날 기적으로 말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됐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경교대교회의 기초를 튼튼히 쌓고 계셨다. “주님, 기도 응답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이 종, 오늘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육적으로 살고자 했던 것을 이제 모두 버렸습니다.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날 나의 입속에선 끊이지 않고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봉래 (8) 경교대원 노천예배 때 소나기 그치는 기적이
입력 2015-02-11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