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때도 명절 연휴였고, 나는 기차역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적막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았다. 옆 벤치에는 한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몇 마디 주고받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혼자 남편과 아들 산소에 다녀왔어요. 아들 살아 있음 서른하나겠네. 스물하나에 사고로 죽고 줄곧 고통 속에 살았어요. 큰딸이 서른여섯인데, 오늘은 혼자 있겠다고 그랬더니 이렇게 자꾸 전화를 하네.” 아주머니는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불편한지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일곱 시까지 아들 산소에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서야 집에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빈 벤치만 보면 자꾸 앉게 된다고 했다. 시어머니 돌아가셨을 땐 도리라 생각하며 울었고, 남편 먼저 갔을 땐 뭐가 그리 급해 빨리 가냐며 억울해했고, 아들 떠났을 땐 도저히 믿기지 않아 가슴을 뜯어냈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나도 눈물이 났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고 명절 때마다 마음과 다르게 부모님과 다퉜던 일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습관처럼 해버리는, 상처 주는 말들. 그건 아름다운 말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기차가 올 시간이 되어 나는 먼저 가야 했다. 잠시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듣고 함께 울었다는 것이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나는 아주머니 손을 꼭 잡고 부디 마음 추스르고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부모님께 잘해요, 살아있을 때….” 하시더니 들릴락 말락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이상하게… 우린 죽어서 더 잘하더라고.”
뒤돌아서면서 나도 속으로 대답했다. “그러게요, 사람이 참 이상하죠. 그래서 서글프기도 하고요.”
낯선 이의 아픔을 들을 일이 흔치 않지만 살다 보면 가끔 있다. 내가 하게 되거나 혹은 듣게 될 테니, 절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아픔을 들을 준비, 됐나요?
입력 2015-02-11 02:10 수정 2015-02-11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