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세계적 은행인 HSBC(홍콩상하이은행)가 ‘더러운 손’들이 빼돌린 돈으로 비밀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 계좌에 ‘탈루 서비스’를 제공했다. 외신들은 일제히 “HSBC가 부도덕한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비판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8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HSBC의 PB(개인고객 자산관리)사업부의 2007년도 내부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은행이 국제범죄자 등에게 계좌를 개설해줬다고 발표했다.
고객 중에는 오사마 빈 라덴의 가장 큰 재정적 후원자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등 아랍 유명 인사 20명과 무기·코카인 밀매상, 독재자들의 자금 운반책, 아프리카의 ‘피 묻은 다이아몬드’ 거래인도 포함돼 있었다. 스위스 일간 르마탕은 HSBC가 신문만 제대로 읽었어도 이들이 테러 행위에 재정 지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ICIJ는 비밀계좌 중 상당수가 ‘부정한 돈’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그런 돈을 맡아준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객의 본국 세무 당국이 모르게 형성된 돈에 대해 자산관리 서비스를 해줌으로써 탈루를 도운 셈이 됐다. 아울러 HSBC는 고객이 스위스에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맡긴 뒤 본국에서 신용카드로 ‘합법적으로’ 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특히 2005년에는 유럽에서 스위스 소재 은행들이 보관 중인 세금 부과 대상 자산에 대해 은행이 강제로 세금을 추징한 뒤 세무 당국에 대납토록 하는 조치가 시행되자 고객들에게 이를 알려주면서 탈루 방법을 조언했다고 BBC는 전했다. ICIJ가 입수한 문서는 PB사업부의 2007년 고객 관리 자료다. 당시 PB사업부는 203개국의 개인과 법인 명의로 개설된 10여만개의 계좌를 통해 1000억 달러(110조원)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국가별 계좌보유 금액은 스위스(312억 달러) 영국(217억 달러) 베네수엘라(148억 달러) 미국(134억 달러) 프랑스(125억 달러) 순이었다. 한국은 203개국 가운데 140위로 2130만 달러(232억원)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계좌 수는 20개였다.
10만 계좌가 다 불법은 아니지만 프랑스 정부가 2013년도에 자국민 명단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99.8%가 탈루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고, 영국도 1100명의 자국민이 1억3500만 파운드(1670억원)의 세금을 탈루했다고 밝혀 상당수가 떳떳지 못한 계좌일 것으로 추정된다. HSBC는 이번 보고서에 대해 “2007년 이후 우리가 돈세탁이나 세금 탈루의 진원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HSBC 스위스 지부, 검은 돈 110조원 관리”
입력 2015-02-10 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