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선거법 위반 유죄] 선거 중립 의무 외면한 채 국정원 조직 이용

입력 2015-02-10 04:01 수정 2015-02-10 09:15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9일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원 전 원장은 징역 3년 실형이 선고돼 법정 구속됐다. 서영희 기자
서울고법은 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이 일사불란한 국정원 지휘체계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지난 대선에 ‘불법개입’했다고 판단했다. 2012년 8월 박근혜 후보가 대선주자로 확정된 뒤 국정원이 작성한 선거 관여 글이 급증했다는 게 핵심 근거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작성한 트위터 글 내용과 작성 시기를 정밀 분석한 결과 선거운동 목적이 충분히 확인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앞서 1심에서 ‘작성자가 특정되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증거로 보지 않은 트위터 글 다수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13만6000여건의 선거 관여 트위터 글 등이 추가 증거가 됐다. 재판부는 해당 선거글과 정치글을 포함한 27만여건 트위터 글의 작성 추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12년 8월을 기점으로 선거글이 급격히 증가했다. 선거운동의 목적성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박 후보가 대선주자로 확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 정치글, 선거글의 총량이 급증했다. 특히 8월 1만2600여개 수준이던 선거글은 다음달에 7만7400여건으로 늘었다. 84∼97%였던 정치글 비중은 8월 들어 23%로 주는 대신 선거글이 77%까지 치솟았다. 대선 직전인 12월에는 선거글 비중이 83%까지 뛰었다. 앞서 1심은 선거운동의 계획성·능동성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며 선거법 위반을 무죄로 봤다. 하지만 2심은 “중립 의무를 무겁게 인식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사이버 활동이 증가한 것은 능동적 선거 개입 행위”라고 판단했다. 70∼80여명에 불과한 심리전단 직원들이 트위터 계정 716개를 활용한 점도 조직적 선거운동 근거로 꼽혔다. 1심은 계정 175개만 증거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글 내용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봤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에 대한 글을 보면 6월 대선 출마선언 이후 참여정부에 대한 부정적 의견 제시가 주를 이뤘다. 안보 문제 등 후보 자질 논란 및 의혹 제기, 주요 공약과 관련된 부정적 의견이 게시됐다. 안철수 당시 후보와의 단일화를 비판하는 등 다양한 주제가 포함됐다. 재판부는 “특정 후보들의 동선 및 주요 공약에 정확하게 대입된 글이 작성됐다”고 강조했다.

원 전 원장 지시로 선거글이 작성됐다는 점도 인정됐다. 원 전 원장이 사이버 심리전 수행을 일관되게 강조했고,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 하면 강에 처박아야지’라고 발언하는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비난해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거 국면에서 활동을 자제해야 함에도 원 전 원장은 사이버 활동을 적극 용인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선거 공정성을 위해 마련된 시기 제한 및 선거운동원, 비용 규제를 모두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국정원 업무가 본연에 집중돼 국민의 신뢰를 되찾길 바란다”며 선고를 마무리했다.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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