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 날이었어요. 검은 복면을 쓴 남자 둘이 마을에 들이닥쳤어요. 아버지, 오빠들, 어린 조카들까지 남자는 모두 죽이고는 제 손을 잡아끌고 트럭에 태웠어요. 결혼을 하지 않은 또래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었어요.
그들은 저희를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두고 걸핏하면 때렸어요. 먹을 수 있는 건 그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뿐이었어요. 그렇게 36일 동안 지옥 같은 곳에 있다가 우연히 문이 열린 걸 발견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어나왔어요.”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구에 있는 도시 자호(Zakho)에 마련된 피난민 마을에서 하나(18)라는 소녀가 한 중년 여성의 손을 꼭 잡고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로 인해 고통받은 야지디족 피난민들을 돌보고 있는 이라크의 유일한 야지디족 출신 여성 국회의원 비안 다킬(43)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지난해 8월초 IS가 이라크 북부 신자르산 근처 야지디족 마을을 습격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수많은 주민들이 학살당했고 여성과 아이들 5000여명이 납치됐다. 기독교 계열의 야지디족은 ‘악마 숭배자’로 취급돼 다른 부족의 여성들보다 더 심한 폭력에 시달렸다. 이후 다킬 의원은 의회에 나가 야지디족을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강제결혼을 당한 야지디족 여성들은 IS 전사들을 따라 시리아 등 각지로 흩어져 있다. 지금까지 탈출하거나 다킬의 도움으로 돌아온 여성은 282명뿐이다.
그녀는 야지디족 구출활동에 나서면서부터 IS로부터 수차례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IS는 가뜩이나 엘리트 여성들을 혐오해 점령지에서 정치인, 변호사, 교수 등 교육받은 여러 여성들을 처형했다.
그러나 그녀는 협박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21세기에 납치와 강제결혼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야지디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방치하면 앞으로 우리 모두가 같은 일을 겪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킬 의원의 연설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합전선과 이라크가 야지디족에 대한 구호활동에 나서고 IS에 대한 공습도 시작했다.
다킬 의원도 직접 구호활동에 참여했다. 8월 12일 구호품을 실은 헬리콥터에 올랐던 그녀는 헬리콥터가 기술 결함으로 추락하면서 갈비뼈와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부상도 그녀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미국과 이라크군의 인도적 지원이 2주 만에 중단되자 그녀는 목발을 짚고서 해외에 나가 야지디족 지원을 호소했다.
지난해 말 국제연합전선의 공습 등에 힘입어 IS로부터 신자르산 일대를 되찾았다. 하지만 마을 대부분은 폐허가 된 뒤였다. 난민촌에서도 야지디족이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다킬은 자신의 집 마당에 일부 난민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여성·어린이 5000여명 IS에 납치된 이라크 야지디족 “동족 구해달라” 女의원 목숨 건 호소
입력 2015-02-10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