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데 여론이 모아지면서 법인세 인상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여야·정부·재계·학계·시민단체 등이 법인세 인상에 대한 입장을 꺼내놓고 있지만 제각각이고, 인상을 했을 때 실제 세수가 늘지에 대한 분석 역시 분분하다. 정부가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등으로 개인의 지갑을 열어젖히는 상황에서 기업도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의견과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활동이 위축돼 오히려 세금이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 서로 맞서고 있다.
◇재계 “법인세 올려봤자 세수 효과 없다”=현재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과세대상 소득 2억원까지는 10%, 200억원까지는 20%, 200억원을 넘으면 2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일단 재계에서는 법인세 인상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게 되면 기업이 투자를 줄일 게 분명해 경기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법인세율이 2% 포인트 증가할 때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이 0.33%, 투자는 0.96%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법인세 세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 법인세 세수는 경기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데 법인세에 부담을 느낀 기업이 설비투자와 임금 지출을 줄이면 경기가 죽어 세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극심한 실적 부진을 겪었던 국내 30대 기업의 법인세가 15% 이상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공기업과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주요 30대 기업의 2014 회계연도 기준 법인세 비용은 2013 회계연도(18조43억원) 때보다 15.4% 감소한 15조2577억원으로 추정된다. 특히 삼성전자의 법인세 비용은 4조4806억원으로 전년보다 3조4089억원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4014억원 줄었고, 기아차는 8227억원 감소했다. 30위권 밖에 있는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경기 둔화의 충격을 더 크게 받기 때문에 실제 법인세 세수 부족은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인해 법인세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소득세, 관세, 부가세 등도 늘지 않는다”며 “GDP 성장률 부진도 영향을 미쳐 세수가 예상보다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법인세율을 올리면 한국기업들이 세금을 줄이려고 국내 생산을 줄이는 대신 해외 생산을 늘리거나 해외법인 쪽으로 수익을 몰아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법인세 때문에 국내에서 이익을 내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 판단하면 울산공장의 생산을 줄이고 터키공장 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법인세 인상이 국내 고용 감소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이미 우리나라의 법인세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국 정부가 거둔 조세 수입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4.0%로 수치가 집계된 27개국 중 노르웨이(20.9%) 다음으로 높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비중도 3.4%로 OECD 국가 중 5번째다.
◇“법인세 올리면 경기 둔화된다는 건 엄살”=그러나 이 같은 재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도 많다. 재계는 법인세를 올릴 경우 투자가 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거 대기업들은 정부가 법인세를 내렸을 때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1991년 34%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002년 27%, 2009년 22%로 낮췄다. 법인세를 낮추면 당장은 세금이 덜 걷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기업 활동이 촉진돼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금이 더 늘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기업들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실제 법인세액도 2009년 9.9% 감소했고 2013년에도 4.4% 줄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정부가 가계소득증대 3대 패키지를 내놓으며 기업에 쌓인 사내유보금을 가계소득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한 것은 법인세 인하가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으로 법인세 비율을 내린 적이 있지만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과하게 쌓아두고 있는 등 혜택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점차 원래대로 환원하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법인세 인상→투자·임금 감소→소비 감소’로 인해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인 돈도 결국 시장에 풀려 소득과 소비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재계의 우려는 엄살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체 조세 소득 중 법인세 비중이 높은 것은 개인사업자가 종합소득세를 법인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1억500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린 개인사업자가 종합소득세로 신고할 경우 38%의 세율이 적용돼 법인세 20%(2억∼20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높아 세금을 아끼기 위해 아예 법인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은 “법인세는 좀 더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세금이 너무 높으면 따라오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지만 법인세는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wide&deep] “법인세 올리면 경제 타격” vs “올릴 수 있는 여지 있다”
입력 2015-02-10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