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민단체 이름 팔아먹는 갑질

입력 2015-02-10 03:59 수정 2015-02-10 15:12

“예전에도 이 시민단체가 사회적 비판에 직면한 대기업 측에 모종의 제안을 했다는 첩보가 있었다. ‘우리가 당신네 기업을 공격하는 투자 피해자들과 합의해줄 테니 돈을 달라’는 식이었다. 당시엔 수사로 연결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자신이 비판하던 론스타 측에서 8억원을 받은 혐의로 장화식(52) 전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가 지난 6일 구속되자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감시견’ 역할을 자처한 시민단체가 감시 대상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비단 이번만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개인의 일탈’이라며 장 전 대표를 파면하고 선을 그었지만 ‘론스타 저격수’가 먼저 론스타 측에 뒷돈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시민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여러 단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온 일등공신이지만 간간이 드러나는 비리는 그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있다. 환경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경우 2009년 부동산 업체에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고, 2013년 대법원에서 결국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4대강 반대에 따른 정치적 탄압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시 많은 시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일부 ‘권력화’된 시민단체의 부작용은 여러 판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섀시 회사 종업원 김모(57)씨는 “퇴폐 영업을 감시한다”는 명목의 ‘불법추방범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하고 스스로 부산본부장이 됐다. 그는 시민단체 회원을 손님처럼 가장해 성매매 영업을 하는 이용원에 들여보냈고, 곧이어 자신도 들어가 사진 촬영을 하며 “회비를 내지 않으면 단속당할 것”이라고 겁을 줬다. 시민단체 직함을 내보이며 그가 마사지 업소 등에서 송금받은 돈은 8105만원이나 됐다. 상습공갈 혐의가 적발된 그는 2009년 부산지법에서 징역 1년9개월을 선고받았다.

환경감시원 행세를 하며 공장 운영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낸 이도 있다. 부산지법은 2008년 ‘환경공해추방운동중앙회’ 사무국장이라는 명함을 파고 부산지역 농지를 전용한 이들을 찾아 협박한 뒤 돈을 받아온 강모(69)씨와 김모(64)씨에게 벌금 100만원씩을 선고했다. 이들은 “폐토사를 불법 매립한 사실을 우리가 고발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위협했고, 고발을 취하한 뒤 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의 경우 오토바이에 ‘환경감시단’이라는 깃발을 달고 농지를 전용한 공장 운영자를 찾아가 작업 내용을 꼬치꼬치 따졌고, 겁을 먹은 피해자에게 30만원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감시자를 자청한 ‘완장질’은 무수한 언론인 사칭 사건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청주지법은 2012년 한 언론인 협회 상호로 사업장을 등록하고 기자 행세를 한 6명에게 징역 2년6개월∼4년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의 산발적 비리는 높은 청렴도 기대치를 깨뜨려 결국 시민단체를 외면하게 만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12.9%였던 우리 국민의 시민사회단체 참여율은 2013년 11.3%로 하락한 상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