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0월 26일 서울 효창공원의 안중근 의사 가묘와 백범 김구 묘역을 참배했다. 참배 후 그는 “후보가 됐을 때부터 참배하고 싶었다. 비로소 도리를 다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문 후보의 당시 일정은 도덕적 의무감의 발로라기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10·26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날인 동시에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이기도 하다. 문 후보는 방명록에 ‘역사를 기억하고 배우겠습니다’라며 과거사를 강조하는 글을 남겼다. 트위터에도 “역사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잊지 않고 되새기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의 일정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부친의 33주기 추도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점을 겨냥한 차별화 전략이자 박 후보의 가족사를 공격하는 이른바 ‘과거사 프레임’의 일환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표 어깨에 지워진 모순된 과제
2년3개월여가 흘러 2·8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쥔 문 대표는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현충원의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비록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형식이긴 하지만 문 대표의 과거 모습과 사뭇 다를 뿐 아니라 제1야당 지도부로서 처음 있는 놀라운 변화다.
이를 받아들인 문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면 더 놀랍다. 전당대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놓고 또 국민들이 갈등하고 국론이 나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저는 그분들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임 대통령으로서 함께 모시고 함께 기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지난날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그것이 우리 국민들의 자부심이다. 역대 정부마다 과(過)가 있다. 그러나 공로가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의 공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건국의 공로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참배가 그저 공당의 대표로서 지켜야 할 의례를 챙긴 차원이 아니라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 자체에서 변화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전과 비교하면 모순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변화다.
당일 문 대표의 발언만 보더라도 이런 불일치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그는 과거 정권과의 화해를 강조하면서도 “민주주의·서민경제, 계속 파탄 낸다면 박근혜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는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또 “더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겠다”고 선명성을 내걸면서도 “집권을 준비해나가는 대안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변화 포기 말아야 집권의 길 열려
대선에서 패배한 뒤 2년여 만에 돌아온 문 대표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실려 있다. 내부적으로는 친노와 비노, 호남과 비호남 등으로 갈라진 분열상을 극복하고 단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여당의 실책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지지 기반을 다져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 전체에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변화도 도모해야 한다. 이런 과제는 때로 이율배반적인 요소들이 혼재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모순된 듯 보이더라도 국민의 마음도 얻고 선명성도 지키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집권의 길이 열리고 정치가 발전한다. 야당의 정적이던 전직 대통령을 참배하는 통합의 길과 현 정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는 양단 사이 어디쯤에 그 길이 존재할 수도 있다. 야당의 이번 선거전에서는 ‘이등박문’이란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고 한다. 박지원·문재인 후보가 대표가 되면 새정치연합은 2등밖에 못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문 후보가 새로운 길 찾기를 포기하면 그저 우스갯소리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
[돋을새김-김의구] 박정희 참배와 대여 전면전 사이
입력 2015-02-10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