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있는 늘푸른교회를 아시는지. 매주 주일 인사동의 한 건물 지하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이곳은 감리교회 은퇴 목회자들을 위한 교회다. 주일이면 백발이 성성한 목회자와 사모 약 100명이 모인다. 성가대원, 피아노 연주자, 주보를 나눠주는 봉사자까지 전부 노인이다. 이들 중엔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감독회장이나 연회 감독을 지낸 인물도 많다.
이들 목회자가 자신이 담임으로 있던 교회가 아닌 늘푸른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급습한 8일 늘푸른교회를 찾았다. 소문대로 예배당을 가득 채운 이들은 70∼90대 목회자와 사모였다. 설교를 도맡는 담임목사가 없다 보니 설교자는 수시로 달라진다. 이날 설교자는 감리교신학대 총장을 역임한 이기춘(77) 목사. 이 목사는 ‘변화산의 신비체험’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예수님 제자로 사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려주었다.
설교가 끝난 뒤엔 정장 차림의 노신사 다섯 명이 앞으로 나왔다. 각각 색소폰과 트럼펫을 든 이들은 ‘늘푸른합주단’. 단원들은 지그시 눈을 감고 찬송가 ‘십자가를 질 수 있나’를 연주했다. 수준급 실력이었다. 성도들은 합주가 끝나자 박수를 치며 “할렐루야” “아멘”이라고 외쳤다.
늘푸른교회의 ‘역사’는 예배가 끝난 뒤에야 들어볼 수 있었다. 담임목사는 없지만 사실상 늘푸른교회의 ‘대표’로 인정받는 인물은 기감 16대 감독회장이었던 김봉록(90) 목사. 그는 “늘푸른교회는 감리교회 은퇴 목사들의 안식처이자 놀이터”라고 소개했다.
“은퇴 목회자 중엔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교회에 출석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이 많아요. 후임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 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죠.”
늘푸른교회는 김 목사와 지난해 12월 별세한 나원용 목사 등이 지인들과 함께 2003년 9월 설립한 곳이다. 이날 교회에서는 나 목사의 아내인 천병숙(84) 사모도 만날 수 있었다. 천 사모는 강당 입구에 앉아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주보를 건넸다.
“나 목사님이 은퇴한 뒤 담임으로 있던 교회(서울 종교교회)엔 안 가려고 하시더군요. 후임자에게 부담이 된다는 거죠. 결국 우리 둘이서 이화여대나 연세대 채플이 열리는 곳을 돌아다니며 6개월 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이곳을 세웠죠(웃음).”
나 목사는 늘푸른교회에서 교회 실무를 도맡았다. 하지만 나 목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 교회 살림은 김현기(82) 목사가 책임지고 있다. 김 목사는 ‘늘푸른합주단’의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교회에서 70대는 청년으로 통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감리교회의 찬란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감리교 박물관’을 짓는 게 저희들 목표입니다. 현재 1억원 가까이 모았어요. 교단이나 젊은 감리교인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기감 은퇴 목회자들 주일마다 집합… 늘푸른교회서 ‘늘 푸른 예배’
입력 2015-02-10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