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인수] 민원처리 관행 변해야 한다

입력 2015-02-10 02:20

행정기관으로부터 위법 부당한 처분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국민들은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한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한다. 지난해 국민들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170만여건의 민원을 냈다. 국민권익위는 민원 가운데 매년 3만건 이상을 직접 조사해 처리한다. 고충 민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행정기관 처분에 대해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충 민원은 줄지 않고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고충 민원 처리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높다. 국민권익위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들은 행정기관의 고충 처리에 대한 만족도를 50점으로 낮게 평가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민원을 제기하는 국민과 공무원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는 국민은 주권자(제1조)이며,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고 명시돼 있다. 더욱이 모든 국민은 국가기관에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제26조). 이러한 헌법정신에 비추어 보면 민원은 국민이 주권자로서 제기하는 구체적인 요구이며 공무원은 이에 성실하고 책임 있게 반응해야 할 책무가 있다. 책무는 민원을 매개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까지 함축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원은 국민과 소통하는 통로이므로 어느 업무보다 우선하여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행정기관과 공무원은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 지난해 국민권익위가 실시한 고충 민원 처리 실태 확인 조사에서 지자체의 72%가 고충 민원 처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만이 있어 다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고충 민원을 원래 담당했던 공무원에게 맡겨 반복 민원을 양산하기도 하며, 고충 민원의 책임을 타 기관에 떠넘기는 핑퐁 현상도 발생한다. 국민들이 고충 처리 만족도에 낮은 점수를 부여하는 이유다. 이들 기관에 고충 민원을 매개로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의 만족도를 높이고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 헌법이 공직자에게 부여한 국민에 대한 책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마음을 갖는다면 설령 해결이 안 되더라도 친절하게 소통해서 민원인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민원 처리에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면 진행 단계마다 민원인에게 알려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언제쯤 결론이 날지 예측 가능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국민이 정책 제안을 하는 경우에는 행정기관이 일방적으로 채택 여부를 결정하지 말고 국민이 참여하는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책과 제도 형성에 국민의 참여를 높이고 쌍방향 의사소통이 오간다면 행정기관과 국민의 벽은 낮아지고 신뢰와 만족도는 올라갈 것이다. 개인의 의식과 업무 처리 행태가 변화하도록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노력과 병행해서 제도적으로 민원 처리 관행과 문화의 변화를 도모할 필요도 있다.

중국의 ‘한서(漢書)’에 정본청원(正本淸源)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근본을 바로잡고 근원을 맑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대학교수들이 새해 희망어로 선택했다 한다. 필자도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에 명시된 국민과 공직자의 기본적 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고 민원의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국민과의 만남에서 국민에 대한 책무를 다하는 것이 ‘정본청원’하는 길임을 새삼 되새겨본다.

김인수 국민권익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