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친러 반군 사이… 지옥에 갇힌 우크라 주민들

입력 2015-02-09 03:12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교전 지역의 최전선 마을인 데발트세베 주민들이 식수탱크에서 물을 받아가고 있다. 교통 요지인 이 지역에서 최근 집중적인 전투가 벌어지면서 주민 수천명의 발이 묶였다. AFP연합뉴스
도네츠크주 부글레기르스크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대원이 부서진 전차 옆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내 침대엔 포탄 조각이 있거든요.”

네 살배기 니키타가 말했다. 니키타는 엄마, 한 살짜리 여동생과 함께 몇 달째 우크라이나 동부 페트로프스키 지역 어린이예술회관의 미로 같은 지하공간에서 피난생활 중이다. 3일 전에는 여기로도 포탄이 날아와 건물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도네츠크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곳엔 니키타 같은 50명의 아이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난민이 살고 있다.

도네츠크주 북동쪽 코무나르는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최전방에서 불과 몇 ㎞ 거리에 있다. 2500명의 주민이 살던 집들은 폐허가 됐다. 80세 할머니 칼리나 알렉세예바는 “이제 먹을 죽이 다 떨어져간다. 살을 에는 바람은 부서진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칼리나는 “죽 대신 먹을 수 있는 감자를 살 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면서 “지금쯤이면 내가 이미 죽어 있을 줄 알았다”고 힘없이 이야기했다.

도네츠크에서 활동하는 한 구호단체 관계자는 “200만∼500만명의 주민들이 교전지역에 갇혀서 고통받고 있다. 식량과 약품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지난달부터 친러시아 반군이 집결해 교전이 심해지고 있는 도네츠크주 데발트세베 지역의 주민 수천명은 계속되는 포격 공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65세의 올가 타라센코는 몇 주 동안 아파트 지하에 숨어 있었다. 그는 “물을 마시고 싶어서 눈을 녹이고,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약을 삼켜야 했다”면서 “우리는 지금 그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인질이나 마찬가지”라고 눈물을 흘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데발트세베는 철도교통의 요지로, 전쟁 때문에 교통 인프라가 망가지지 않는다면 승리하는 쪽에는 큰 선물이 될 곳”이라면서 “하지만 계속되는 포격에 2주 넘게 식수와 전기, 난방 공급이 되지 않아 주민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미니버스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미니버스를 타는 까닭은 큰 버스가 움직일 경우 공격대상이 되기 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전 때문에 구호단체와 자원봉사자의 접근조차 쉽지 않다. 데발트세베 인근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알렉산더 페트로프는 “어제 데발트세베로 주민들을 데리러 가던 차량이 공격을 받았다”면서 “그래도 무조건 구하러 가야 한다. 주민들이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6일 모스크바 방문을 전후해 자체적으로 준비한 해결방안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 제시하고 타협안 도출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 우크라이나 4개국 정상들은 8일에도 전화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지속적으로 모색했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들 4개국은 각자 입장을 조율해 11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재차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에 앞선 9일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를 위한 유럽연합(EU) 외무장관 회의가 개최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