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486(40대·80년대학번·60년생)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2·8전당대회를 통해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했다. 당 대표 선거에 나선 486리더 격인 이인영(사진) 의원은 12.92%에 그치며 맥없이 낙선했고, 오영식 의원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4위로 턱걸이하며 지도부에 입성했다.
이들은 ‘세대교체·권력교체’ ‘혁신과 통합의 젊은 리더’ 등을 내걸었지만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후 486그룹은 재기냐 몰락이냐는 기로에 서게 될 전망이다.
이 의원은 선거초반 ‘3인 컷오프’를 통과하며 본선에 진출해 ‘다크호스’로 분류됐다. 이 의원은 486그룹의 대의원·당원, 고(故) 김근태 계열인 민주평화국민연대 등 ‘기본표’가 있었다. 선거 막판에는 서울시의원 76명 중 39명이 이 의원 지지를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486표는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확장력에 한계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성향이 비슷한 문재인 의원의 표를 가져오거나 문 의원과 박지원 의원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중도표를 대거 흡수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8일 “20%는 가져왔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대에서 이 의원의 세대교체 구호는 문·박 의원의 거친 공방전 속에 묻혀 조명받지 못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486을 바라보는 당원과 국민의 차가운 시선이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의원 등이 세대교체를 외쳤지만, 당내에서는 “자신들이 10년 넘게 주류가 아니었느냐”는 싸늘한 시선이 많았다. 특정계파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는 ‘하청 정치’라는 말도 나왔다. 486내부에서조차 학번과 학벌에 따라 나뉘었고, 전대협 의장단 서열을 중시하는 듯한 권위주의적 풍조도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486은 1996년, 2000년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이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야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가 2·8전대의 성적표인 것이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
▶ 관련기사 보기◀
[새정치 문재인號 출범] 이인영 낙선·오영식 ‘턱걸이’… 재기냐 몰락이냐 기로에 서다
입력 2015-02-09 02:43 수정 2015-02-09 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