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지방행정공제회에서 1700억원의 기금을 운용하던 전직 펀드매니저 조모(37)씨에게는 위험한 버릇이 있었다. 기금으로 국내 주식을 사기 전 종목과 수량을 주변에 ‘카카오톡’으로 귀띔해주곤 했다. 물론 괜한 ‘큰손’의 과시가 아니라 차익을 나눠 먹자는 신호였다.
조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아온 J증권사 차장 박모(38)씨와 내연녀 장모(33)씨는 이런 신호를 잘 이해했다. 박씨와 장씨는 카카오톡에 적힌 종목을 사전 매수했고, 30초쯤 뒤 매수가격보다 2∼3% 높은 가격을 매겨 주식시장에 내놨다. 이렇게 고가의 매도주문까지 마친 직후에는 조씨에게 “매수를 완료했고, 매도주문도 제출했다”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조씨는 이때에야 ‘시장가 매수주문’을 제출, 박씨 등이 내놓은 물량을 공제회 기금으로 사들였다. 시장 통상 가격보다 2∼3% 비싼 상태가 돼서야 굳이 공제회 돈으로 투자를 한 셈이다. 매수가격 대신 수량만 정하는 ‘시장가 매수주문’을 택한 이유도 박씨 등에게 차질 없이 차익을 안기려는 목적이었다.
이들이 부정한 차익을 공모한 주식 중에는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처럼 덩치가 큰 종목도 있었다. 조씨는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이런 식으로 박씨와 9개 종목을 통정매매(通情賣買)해 1억5000만원을 취득했다. 이후에는 지난해 9월까지 내연녀 장씨에게 48개 종목 매수 계획을 흘려주고 11억4000만원을 빼돌렸다. 이들이 공제회 기금 투자를 가장해 종목마다 2∼3%의 이익을 거두는 데는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장난질은 금융 당국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조씨의 기금 운용을 두고 지난해 12월 9일 서울중앙지검에 ‘패스트트랙’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접수 5일 만에 조씨를 체포했고, 4억원 상당의 주식 등 범죄수익금 6억2500만원을 환수했다. 검찰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나누며 통정매매를 한 3명을 8일 모두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조씨 외에 ‘큰손’ 갑질을 한 공제회 전 펀드매니저 박모(41)씨도 구속 기소했다. 박씨는 거래증권사 선정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증권사 법인영업부 직원들로부터 4450만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박씨 역시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금융위에 매매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회사자금을 개인적으로 취득하는 금융투자업계의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확인했다”며 “공제회 감사자료 등을 통해 관련 비리를 계속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짜고치는 주식투자로 기금 13억 ‘꿀꺽’
입력 2015-02-09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