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서 근무한 지 2년이 되어 갈 무렵이다. 나는 광천 폭력조직 일균(가명)이를 만났다. 면회할 때마다 자주 입회해 대화를 나눴고 서로 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벌금형을 받고 출소를 했다. 얼마 후 광천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우연히 일균이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반가워하며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우리는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얘기꽃을 피웠다. 잠시 후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고 사무실 뒷문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방을 통과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화장실 옆에 놓여있는 운동기구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나는 일균에게 용도를 물었으나 운동기구라고만 대답했다. 나는 순간 그 기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이 갔다. 그 기구는 보통 조폭들이 흉기로 쓰는 물건이었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솟았다. 나는 헤어지면서 그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임무가 무엇인가. 재소자들을 교화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던가. 비록 담 밖에 있는 형제였지만 일균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홍성교도소 미결수 수용동에서였다. 설마 했었는데 그는 또다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나는 일균이와 상담을 시작했다. 일균은 차츰 심적 동요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는 독방에 다녀오면서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감방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독방 신세를 졌다. 잠시였지만 독방의 혹독한 환경을 경험하자 그는 예수님을 찾았다.
이런 일균에게 좀더 확실한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광천평지교회 신흥식 목사님을 찾았다. 신 목사님은 검찰공무원으로 근무한 이후 신학공부를 해서 목회자가 됐다. 그는 광천을 사랑했고 광천의 조직폭력배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으로 불타고 있었다.
나는 신 목사님에게 일균에 대해 말했고 서로 기도하며 전도하기로 했다. 목사님은 나에게 일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며 수번과 주소를 요청했다. 그때부터 목사님의 선교와 ‘철창 전도’가 시작됐다. 일균은 예상 외로 목사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였고 미결수 감방에서 몇몇 재소자들과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자신의 방에 성경 찬송이 없다고 해서, 그 즉시 성경 찬송을 넣어준 일도 있었다. 일균은 신앙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혹시 목사님이나 장로님이 교도소에 오면 내 방으로 보내주세요.” 나는 웃으면서 “아니, 도대체 그런 분들이 뭣 때문에 여기 오겠냐” 하고 말했다. 그는 “아니, 그분들은 사고도 안 내시나요? 교통사고 내고 어쩔 수 없이 오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 모두는 한 치 앞을 모른다. 실제로 교도소에는 종종 장로님이나 집사님 같은 신앙인이 들어온다. 대전교도소에서는 목사님 한 분이 교통사고를 내고 교도소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감방에 들어온 날부터 전도했는데 교도관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일균은 나중에 벌금형을 받고 출소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택시 승강장 단장부터 교회 성도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등 착한 일을 실천했다. 그를 이끌어준 신 목사님을 위해서는 광천 오거리에 교회 간판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현재 곰탕 식당을 운영한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봉래 (7) 회심한 조폭, 광천 5거리에 교회 간판 세워 보답
입력 2015-02-10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