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수기·석면·공기 관리 누가? 보건교사-행정공무원 갈등

입력 2015-02-09 02:13

전남의 한 초등학교 보건교사 A씨(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 옥상에 올라가 물탱크 속 부유물과 물 색깔을 확인한 뒤 점검 일지를 쓴다. 그는 매번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이상 여부를 알 수 없어서다.

서울의 초등학교 보건교사 B씨(여)도 30대가량 되는 정수기 주변 청소를 맡고 있다. 분기마다 정수기 꼭지를 일일이 소독한다. 그는 “간호학이나 교육학과 전혀 무관한 일을 맡다보니 행정서류 정리에 보건수업 준비, 아픈 아이들 돌보기에 상담까지 너무 벅차다”고 했다.

1967년 제정된 학교보건법이 규정한 보건교사 업무에는 학교 환경위생 유지·관리가 포함돼 있다. 석면이나 공기 질 관리, 정수기·물탱크 관리 등이 모두 보건교사 몫이다. 40년을 넘긴 이 법의 불합리함을 고치려고 교육부는 2007년 학교보건법을 개정했다. 보건교사를 ‘보건교육’과 ‘학생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이로 명시했다. 환경위생 장비 관리 업무를 뺀 것이다. 지난해 12월 17일 보건교사 업무를 대폭 줄이는 시행령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그러자 다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공중에 뜬 환경위생 관리 업무를 누가 맡느냐를 두고 교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서로 ‘가욋일’을 떠맡기 싫어해서다. 새 학기를 앞두고 불거진 업무영역 다툼에 학생들만 피해 볼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개정안은 보건교사 업무에서 학교 환경위생 관리를 빼버렸다. 학생건강기록부 관리 의무도 사라졌다. 이 때문에 학급 담임이 건강기록부를 관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환경위생 관리는 누가 맡아야 할지 애매하게 됐다. ‘각종 질병의 예방처치’ 업무도 ‘학교 감염병 예방’으로 범위가 줄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열악했던 60년대 학교와 현재의 상황이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 규정을 바꾼 것”이라 설명했다.

당장 학교 행정직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 시·도교육청 일반직공무원노조는 최근 성명을 내고 개정안을 정면 비판했다. 조채구 위원장은 8일 “보건교사가 도맡던 환경위생 관리 업무를 갑자기 누구보고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반직공무원노조 측은 “간호사 단체를 뒤에 둔 보건교사들 입김에 눌려 교장은 행정직에 시설 관리를 맡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예상외로 잡음이 커지자 교육부 관계자는 “낡은 규정을 삭제한 건 맞지만 보건교사가 아예 환경위생 관리나 질병관리 등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학교장이 재량에 따라 구성원에게 업무 분장을 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