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하얼빈 의거 현장에 울려퍼지다

입력 2015-02-09 02:37
7일 오후 중국 하얼빈시 환구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역을 맡은 배우 강태을(가운데)이 단지 동맹 후 조국 독립을 향한 굳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에이콤인터내셔널 제공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일제 강점기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에서 106년 만에 그가 외쳤던 동양평화사상이 다시 울려 퍼졌다. 7일 오후 7시(현지시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환구극장에는 안 의사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웅’의 역사적인 첫 공연을 보기 위해 중국인과 동포 등 1600명이 몰렸다. 이번 공연은 안 의사 순국 105주년과 광복 70주년을 맞은 해에 열려 의미를 더했다. 8일까지 총 3번 이어졌다.

‘영웅’은 12명 항일투사가 자작나무 숲에서 손가락을 자르며 의지를 불태우는 ‘단지 동맹’부터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토 저격, 안 의사의 여순 감옥 순국까지의 행보가 동양적이면서도 웅장한 선율과 박진감 넘치는 군무에 겹쳐진다.

공연 중 이토를 향한 7발의 총성이 울린 뒤 안중근 역의 배우 강태을(35)이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자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나왔다. 공연 후 관객들은 기립했고 배우들은 감격스러워했다. 제작진은 중국 관객을 위해 장면도 일부 바꿨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거사를 준비하던 안 의사와 동지들의 대화는 대부분 중국어로 이뤄졌다. 어눌한 중국어 연기에 객석에선 웃음도 터졌다.

중국어 자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도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중국어 교사 멍셩아이(30·여)씨는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했고, 뮤지컬 배우 장시안(29·여)씨는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연기와 음악이 감동적이었다”고 평가했다. 1700㎞ 떨어진 베이징에서 세 아이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주부 윤혜영(42)씨는 “한국인으로서 작품을 볼 수 있어 자랑스럽다. 아이들이 ‘영웅’을 통해 애국심을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하얼빈 현지공연은 사실 만만치 않았다. 7년 전 제작단계에서 이곳을 찾았던 ‘영웅’팀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무산되다 국내 초연(2009) 이후 5년4개월이 돼서야 이 땅을 밟게 됐다. 한국과 동일한 무대를 완성시키려 컨테이너 5개 분량의 세트가 움직였다. 3억5000만원 상당의 제작비, 서른여섯 명의 배우를 포함해 스태프도 100명이 넘었다. 제작진은 “중국에 한국 뮤지컬의 본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도 가치가 있다”고 했다.

하얼빈시는 지난해 1월 하얼빈 역에 자리한 안중근 기념관의 개관 1주년을 맞아 물심양면으로 공연 개최를 도왔다. 강태을은 기념관에 들러 “이곳에 와서 공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연출자인 윤호진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은 “독립운동을 하는 정신으로 준비했다”면서 “하얼빈을 전진 기지로 중국 내 한류 뮤지컬 시장 개척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영웅’ 공연은 4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다.

하얼빈=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