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이미지? 그 앵글 찾는데 40년 걸렸다”

입력 2015-02-09 02:43
마이클 케나(왼쪽)와 배병우 작가를 ‘흔해빠진 풍경 사진’전 개막일인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공근혜갤러리에서 만났다. 뒤에 보이는 배 작가의 경주 남산 소나무 사진에 대해 케나는 “시적이고 아름답다. 보고 있으면 안으로 빨려드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저작권 분쟁을 낳았던 마이클 케나의 강원도 삼척 솔섬 사진.
마이클 케나의 ‘프랑스 파리 에펠탑’. 1987년작. 광활한 하늘과 물에 피사체가 반영이 된 풍경은 1980년대 그가 즐겨 찍은 스타일이다. 솔섬이 탄생하기까지의 맥락이 읽혀지는 작품이다. 배병우 작가는 이 작품이 좋아 사고 싶다고 말했다.공근혜갤러리 제공
마이클 케나(62)와 배병우(65). 각각 영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풍경사진 작가다. 영국 가수 엘튼 존은 두 사람 작품의 애호가다. 케나는 한국의 저작권 소송사에 남을 ‘솔섬 사진 소송’의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강원도 삼척 ‘솔섬’ 사진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공모전 당선작을 광고에 활용했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한국 법원은 지난해 3월 1심에 이어 12월 항소심에서도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엔 졌어도 할말은 많다는 듯 케나가 사진전을 갖는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흔해빠진 풍경 사진전’. 개막일인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길 공근혜갤러리에서 둘을 만났다.

법원 판결에 대한 견해를 묻자 배 작가가 나섰다. 그는 “케나가 찍기 전까지 ‘속섬’으로 불렸던 곳이다. 왜 지금은 ‘솔섬’(케나가 2007년 pine trees라는 제목으로 찍음)으로 불리냐. 풍경 사진이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거라면 왜 우리들 작품을 사겠느냐”며 “사회 전체의 수준이 높아져야 할 문제다. 문화선진국이라면 이런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풍경을 어느 계절,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어떠한 앵글로 촬영하느냐의 선택은 일종의 아이디어로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케나는 “아이디어와 표현은 밀접하게 연관돼 구분하기가 어렵다. 지금의 스타일을 만들기까지 40여년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해왔다”고 반박했다.

전시에는 문제의 솔섬 사진도 있다. 누구나 그 자리에서 찍으면 그런 구도가 나온다고 하는 그 앵글을 찾는데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그는 “40년이 걸렸다”고 농담을 했다.

케나는 “작가의 가치관, 영적 경험, 성장 배경, 철학이 다 녹아있는 게 스타일”이라며 “내 작품에선 디테일을 배제하고 간결하고 은근한 이미지를 추구한다. 다 보여주기보다 사람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사진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지망생들에게 뼈있는 한마디도 했다.

“저도 취미로 주말에는 기타를 칩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즐기는 거지요. 취미가 아니라 사진을 프로로서 추구한다면 평생을 바쳐야 합니다. 흔해빠진 이미지가 아니라 본인만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붓 대신 카메라로 그린다는 평을 듣는 배 작가. 그도 “제가 소나무 사진을 찍은 위치에 몰려가서 사진을 찍는 줄 안다. 아마추어 때는 그럴 수 있다. 전문가가 되려면 달라져야 한다. 널려 있는 게 소재인데, 왜 남을 따라 찍느냐. 그렇게 하면 절대 갑으로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섬은 케나의 것이다. 저라면 솔섬을 찍지 않고 지나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에는 솔섬 사진의 탄생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케나의 1980, 90년대 대표 작품 5점이 나왔다. 모두 풍경이 물에 비치는 사진으로 수묵화의 느낌을 준다. 또 케나가 프랑스를 찍은 사진 20여점도 선보인다. 배 작가는 경주 남산의 웅장한 소나무 사진 3점을 내놨다.

케나는 “배 작가의 안개 낀 소나무 풍경 사진을 특히 좋아한다. 보고 있으면 그 안에 빠져들 것 같다. 나는 작은 사진, 배 작가는 스케일이 큰 사진을 찍지만 둘 다 공통점은 시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작가는 케나에 대해 “수십 년 전부터 좋아했다. 저보다 어리지만 먼저 유명해진 사람이 아니냐”고 화답했다. 전시는 다음 달 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