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시장인가 싶을 것이다. 흰 벽을 채운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거대한 설치작품의 스펙터클이 있는 것도 아니다. 460㎡의 휑한 공간에 멀찍이 냄비 2개를 올려놓은 테이블이 얼른 눈에 띨 뿐이다. ‘WELCOME (환영)’이라고 쓴 현수막은 뒤집힌 채 걸려 있다. 게다가 한 쪽 구석에 피다 만 담배꽁초가 든 재떨이를 둔 것은 뭐람.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다음 달 29일까지 열리는 싱가포르 작가 히만청(Heman Chong)의 개인전 ‘절대, 지루할 틈 없는’은 전시에 대한 통념을 전복시킨다. 전시가 관객을 정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가 묻는 듯한 설치와 영상 작품이 듬성듬성 있는 게 전부다. 전시 개막 리셉션에서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고 담배나 피우러 나가는 관객을 위해 이날만은 여기서 피워도 좋다는 뜻에서 작가는 전시장 한쪽을 흡연장으로 내놓았다. 또 다른 테이블 위에서는 전시 기간 내내 냄비 안의 물이 끓어오르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등을 돌린 듯 걸려 있는 현수막은 ‘관객을 환영하고 있는 거 맞아’라고 묻는 듯하다. 성인 3000원, 학생 2000원.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전시가 마련됐다. 젊은 작가 7명이 참여한 ‘숭고의 마조히즘’은 유행처럼 돼버린 관객 참여 방식의 전시가 작가가 쥔 권력을 관객에게 돌려주고 있긴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결론적으로 관객 참여를 내걸었지만 작가의 세팅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기획됐다.
가장 직설적으로 비꼬는 작품은 고창선의 비디오 ‘빨강에 박수’. 파란색 화면에 순간순간 빨간색 화면이 섞여 나온다. ‘빨강에 박수를’이라는 자막과 함께. 또 다른 작품 ‘긴장하는 스피커’ 앞에는 ‘가까이 다가오세요’라고 써 있다. 막상 다가가면 스피커가 목을 빼듯 갑자기 소리를 내며 올라가 놀라게 한다.
박준범은 7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모집해 이들이 퍼즐의 한 조각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정해진 목표를 수행하게 하고 이를 촬영한 작품을 내놓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참여자들은 자신의 작업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촬영과 편집, 회화의 전통적인 투시도법에는 모두 시선의 권력이 있다. 이를 각각의 방법으로 해체해 낯설게 제시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 입장료는 일반 3000원, 청소년 2000원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너도나도 관객 참여” 유행 꼬집는 반전
입력 2015-02-09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