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지구 나이 1만년’은 이제 그만 …

입력 2015-02-07 02:55

사슴을 보고 말이라 칭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한국사회를 비유하는 말로 유행했다. 지록위마 현상은 올해도 계속된다. 연말정산으로 세금을 더 내는 국민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에 속은 느낌이다.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자원외교 성과 등 사실관계 문제와 더불어 자화자찬 일색이란다. ‘대통령의 자뻑’이 더 적당한 제목이라는 비난도 거세다. 다른 시각을 제시한 책 ‘MB의 비용’(알마)을 봐야 균형이 잡히겠다.

사슴을 말로 바꾸는 둔갑술은 정치가들만의 수완이 아니다. 원산지를 분간할 수 없는 소비자에게 중국산을 국산이라고 속이는 상술도 마찬가지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는 말로 업그레이드시켜 헌금을 걷는 교회는 또 어떤가. 어느 헬스장에 들렀더니 반값 할인 기간이 오늘 끝난단다. 흠, 내일은 또다시 할인기간이 시작되리라 짐작된다.

말이라는 이름표를 긴 목에 걸고 있는 슬픈 사슴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대다수가 사슴을 말이라 부른다면 그 단어가 사슴을 뜻하게 된다. 물론 이름이 바뀐다고 해도 사슴이 말이 될 수는 없다. 지록위마는 속임수일 뿐이다.

과학으로 방향을 돌려보자. 사슴이라는 것을 100% 확신할 수 있을까? 말과 닮았거나 말처럼 소리 내고 행동하는 사슴도 있겠다. 유전자 검사는 정확하겠지만 보통 사슴과 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슴이라면 어떨까?

사슴처럼 생겼고 행동하고 소리를 낸다면 과학자들은 사슴이라 부른다. 충분한 증거가 있으면 그렇게 결론을 낸다는 말이다. 과학은 연역적으로 증명되는 수학과는 거리가 있다. 실험으로 결과가 재현되고, 100도에 물이 끓는 등의 단순한 현상은 입증된다. 하지만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굵직한 체계인 과학이 완벽히 증명되지는 않는다.

경험적 증거들을 종합하는 귀납적 방식이 과학에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모든 증거가 깨끗하게 하나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맞지 않는 데이터가 종종 발견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이 수정되거나 폐기되는 과정이 과학이다. 과학은 자연이라는 실재에 점점 다가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한국교회 내에서 지구 나이를 둘러싸고 창조과학자들과 지질학, 천문학자들 사이에 첨예한 이견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구 나이가 1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지질학, 천문학의 과학적 증거는 압도적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지구 나이가 1만년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 반면 지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지질학자들의 설명에는 어려운 데이터를 찾아내 반박하는데 열중한다. 반증처럼 보이는 데이터를 과학자들이 연구하면 바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연대 문제는 더 이상 과학의 이슈가 아니다. 오십 평생을 살았지만 지구의 움직임을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며 지동설이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과학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지구 나이 1만년이라는 주장은 거의 천동설 수준이다. 그 주장이 맞는다면 지질학과 천문학, 그리고 물리학을 거의 통째로 뒤집어야 한다. 멀리서 보면 사슴은 말과 비슷하기라도 하다. 창조과학자의 주장 앞에서 지록위마는 애교로 봐주고 싶은 심정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도 아닌 창조과학자들이 교회 회중 앞에서 그런 주장을 펴다보니 매우 심각한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했다. 지구 나이 1만년이라는 창조과학과 지구연대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지질학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개신교인들은 부지기수다.

지구연대가 오래되었다는 과학이 신앙과 모순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과학사를 보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연구했고 근대과학의 성립에 이바지했다. 하나님의 일반계시인 자연이라는 책에는 46억년 지구역사와 138억년 우주역사가 멋지게 펼쳐진다. 과학시대 이전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위대한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자연에 담겨 있다.

창조과학은 자연에 드러나는 창조주의 위대함을 왜곡하는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지구가 젊다는 주장으로 지성인들이 복음에 귀를 닫게 만들고 청소년들이 과학 때문에 신앙을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쓴 뿌리를 심는다. 복음의 진보를 원한다면 지구 나이 1만년이라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멈추어야 한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