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사는 형제들은 죄명도 각양각색이지만 성격 또한 맞추기 어렵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과 뜻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않으면 되고,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교도소는 보기 싫어도 봐야 하고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한다. 그래서 화목이 중요하다.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1980년대 후반쯤이었다. 교무과 근무를 하던 중 하루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한 재소자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옥상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해를 했다.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뛰어내린다는 것이었다.
그를 찬찬히 살펴보니 왕기(가명)였다. 그는 백내장 수술을 하기 위해 교회 후원을 받아 천안순천향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왔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왕기야, 어서 내려와라.” 왕기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엉엉 울면서 사무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고 수술까지 도왔던 나를 보고 미안했던 것 같았다. 직원들도 나더러 “들어가세요. 지금 왕기는 누구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마디 더 하고 싶었다. “왕기야, 너를 믿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마라. 인식이를 생각해야지”라고 했더니 그는 더 이성을 잃은 듯 날뛰었다. 왕기 부모님은 늦게 신앙생활을 하셨다. 아들 사랑이 깊어 면회 올 때면 항상 손자인 인식이를 데려왔다.
나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소장님께 부탁해 창살 밖에서 면회를 하도록 했다. 인식이가 창살 너머의 아빠를 보면 상처가 클 것 같아 특별 면회를 시켜주었고 왕기 모친은 손자에게 아빠는 기도원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인식이는 그 말을 믿었다. 왕기는 특수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승합차에 슈퍼마켓을 차릴 정도로 싹쓸이하는 절도단 두목이었다. 그는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왕기가 난동을 부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체념하고 의무과로 옮겨 자해 부위 봉합 수술을 받았다. 의무병동에 누워 있는 왕기를 찾았다.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눈을 감았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왕기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뒤늦게 후회했다.
왕기는 그 후 진주교도소로 이송됐다. 홍성교도소에서 예수를 영접했고 진주에선 성경통신대학 교재로 말씀을 공부한다고 연락이 왔다. 왕기는 나에게 사랑이란 단어를 마음속에 새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도망치려 했었다. 하지만 나를 생각하고 자신의 욕구를 참으며 도주하지 않았다. 그가 써준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왕기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이 교회 저 교회 찾아 하소연하던 그때 아내가 선뜻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내어주며 격려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왕기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다닐 때 사람들은 재소자들에게 무슨 수술을 시키느냐면서 반대했었다. 마찬가지로 교도소 감방 시설이 너무 좋으면 안 된다.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무슨 선풍기와 TV가 필요하냐고 말하는 기독교인도 만나보았다.
사람들은 교도소는 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소자들은 사회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혹독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된다.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지금은 처우나 생활환경이 많이 개선됐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봉래 (6) 죄는 미워도 정녕 사람을 미워해선 안됩니다
입력 2015-02-09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