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면 조바심이 돋는다. 봄의 꽃, 매화가 철모르고 일찍 피어나려다 얼어붙진 않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겨울 냉각기를 거쳐야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매년 반복되는 ‘매화 조급증’은 어쩔 수 없다. 매화를 대신해 겨울 대나무를 보기 위해 인근 숲을 찾았다. 칼바람에도 대나무는 올곧게 서 있다. 땅 속에서 서로의 뿌리를 연결해 바람을 견뎌낸다는 대나무들. 올곧음과 역경을 유연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 세상살이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특히 모소 대나무에 이르면 자연의 가르침은 절정에 이른다. 중국 극동지방에서 자라는 희귀종인 모소 대나무는 생태가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농부들이 매일같이 정성들여 키우지만 초기 4년간은 3㎝밖에 자라지 않다가 5년째가 되면 하루에 30㎝ 이상씩 자라 6주에 25m에 이르기도 한다. 자연계에서 가장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종인 셈이다.
모소 대나무류의 큰 폭의 성장을 경영학에서는 퀀텀 점프라고 부른다. 수많은 기업들이 퀀텀 점프를 꿈꾼다. 알리바바, 페이스북 등의 성공사례가 나오는 IT 분야에서는 어느 곳보다 퀀텀 점프를 꿈꾸는 기업이 많다. 문제는 방법이다.
다시, 자연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모소 대나무가 급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뿌리에 있다. 4년간 땅 밑으로 깊고 넓게 자리 잡은 뿌리는 5년째가 되는 해부터 거대한 자양분을 땅 위로 올린다. 한 곳에서 나고 자라는 나무도 이러할진대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 속에 자리 잡은 기업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것이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소 대나무보다 더욱 굳건한 뿌리가 필요하다.
IT 기업의 근간은 기술력이다. 적극적인 투자로 업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해야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제품 및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구글이 수많은 특허를 기반으로 정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어 세계 검색시장 1위 기업이 된 것처럼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요즘 IT 기업은 기술 개발이라는 본질보다 트렌드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기술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만 예측하는 꼴이다. 스타트업부터 중견기업, 대기업까지 연구보다는 본인들이 미래 기술을 선도한다는 ‘말’만 앞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반풍수(半風水)의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미래 예측은 실패하기 쉬우며, 잘못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원칙과 기준을 중시하고 철저한 예측과 리스크 관리를 통해 강점과 핵심 역량을 굳건히 하고 수익 구조를 안정화해야 한다.
올해 산업계 최대 화두인 사물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사물인터넷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이 대화한다는 개념이다. 근거리 네트워크에 국한하자면 정확성이 높고 가격이 합리적인 블루투스와 와이파이가 다시 각광받고 있다. 그동안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기술의 활용처가 좁고 이익 폭이 낮다며 근거리 네트워크 기술 사업 부분을 축소했던 기업들은 기회를 놓치고, 기술을 발전시킨 기업은 관련 사업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트렌드만 좇아가다가 도리어 가장 큰 트렌드를 놓친 기업들이 많다.
뿌리 깊지 않은 나무는 외풍에 약하고, 뿌리가 강한 나무만이 크고 곧게 성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모소 대나무를 닮은 기업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
[기고-김태섭] 자연에서 경영을 만나다
입력 2015-02-07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