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2G 폰을 쓰고 있다. 수술 후, 인지력이 떨어져 바꾸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친숙함이 좋고 스마트폰으로 바꿀 경우 밴드나 카톡 같은 기능으로 지금보다 더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인생 후반전에는 아기처럼 단순하게 살고픈 게 나의 바람이다.
그래도 이 폰으로 중보기도 사역까지 하고 있는 걸 보고 사람들은 놀라움과 우려를 드러내지만 당사자인 나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먹통이 되어 AS를 받는다. 용량이 적은 탓에 대부분 수신함과 발신함을 비우면 원상복귀되지만 별 방법을 다 써도 복구가 안 될 때 AS 기사는 최후 방법으로 초기화를 권한다.
만일 우리의 매일이 햇살 찬란한 날들로 이어져 있다면 어떨까?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와 질병과 사망권세를 도말하신 것을 믿기에 일상 속에서 만나는 어려움도 기꺼이 헤쳐나가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몸부림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때로는 투철한 사명까지 흔들어 놓는 복병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초기화라도 해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진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로 시행착오 없이 잘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아이의 배냇저고리와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보관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우리 삶을 디자인하신 주님께는 우리 삶의 그 어떤 부분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좁고 험난하고 머나먼 길, 눈물 많이 흘리며 가는 길일지라도 주님 손잡고 가는 길이니 두려울 것 없는 길이며 진정 영광의 길이 되리라. 이번 주말엔 하늘의 조명이 좀 더 밝아져 우리 가는 이 길을 훤히 비춰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박강월(수필가, 주부편지 발행인)
[힐링노트-박강월] 아기처럼 단순하게
입력 2015-02-07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