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선언하자 대중의 울혈과 분노가 녹아내렸다.
‘분노조절장애, 화병(火病) 부르는 한국’이라는 오명을 씻어줄 신선한 반향이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됐던 어두운 사건 현장에 희망의 햇빛 한 줄기가 내려왔다.
용서는 살아 있었다.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성경 속에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용서의 힘
누군가 내 아들이나 딸을 숨지게 했다면. 고통의 시간 끝에…. 자식의 목숨을 앗아간 이를 마주한다면. 영원한 저주의 말이나 잔혹한 복수 말고 돌려줄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 세 사람은 ‘용서한다’는 메시지를 가해자에게 전했다. 용서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들은 크리스천이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형제를 용서하라”(마 18:22)고 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
아들을 친 ‘뺑소니범’이 있는 청주 흥덕경찰서를 찾았던 강태호(58)씨. 강씨는 지난달 29일 “자수를 했다니까 엄청 고맙더라. 고통스러울 것 같아 위로해주러 왔다”고 해 감동을 줬다. 그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경을 읽고 성경에 의지해 살려고 노력해요”라고 했다.
그의 아들은 지난달 10일 새벽, 길을 건너다 한 차량에 치여 숨졌다. 아들은 임신 7개월째인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들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아들을 친 차량은 뺑소니를 쳤다. 사건은 ‘크림빵 뺑소니’로 회자됐다. 수사 압박 속에 가해자가 마침내 자수하자 그의 가족은 고마워하며 가해자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씨는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 “(사건 제보자에게) 현상금 3000만원을 주겠다고 걸었어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이거 마무리하기 전까지 생각이 더 없어요. 정리되면 연락드릴 겁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이슬람 수니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1일 아들 고토 겐지를 잃은 일본인 이시도 준코(78)씨 역시 전 세계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시도씨는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다. 이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 표현이다. 고토씨와 그 가족은 일본 기독교단 덴엔초후교회 신자였다.
‘용서의 힘(The Power of Forgiveness)’이란 유튜브 동영상도 화제다. 2003년 11월, 48명을 숨지게 한 미국 ‘그린 리버 킬러’ 개리 리지웨이의 재판정. 가족을 잃은 이들이 그를 향해 증오의 말을 쏟아낸다. 딸을 잃었던 로버트 룰씨.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결국 살인범은 눈물을 터뜨렸고, 유족에게 용서를 구했다. 동영상 조회수는 100만건에 육박하고 있다. 박종순 충신교회 원로목사는 “용서하는 이들의 모습은 위대하다. 예수님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실제 우리가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용서의 성경적 의미
성경에서 용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뜻을 범한 인간들이 자비를 부르짖어 구하고 얻을 때마다 등장한다. 용서는 자비와는 다르다. 자비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일에 하나님이 참으시는 것이라면 용서는 사람이 죄책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요일 1:9). 성경에 ‘용서’라는 단어와 그와 유사한 어휘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개념의 중요성을 시사해준다. 영어성경 NIV에서는 150회, 한글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49회가 나온다. 한글 성경에서는 ‘(죄를) 사하다’는 표현도 같이 쓰인다.
구약에서 용서에 대한 첫 언급은 요셉의 이야기다. 야곱의 유언은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창 50:17). 요셉은 형제들에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자비를 약속했다. 역사서는 하나님은 용서하려는 의지가 있으시며 그 백성은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선지자들에 따르면 하나님은 진정한 용서의 하나님이며 심판이 당장 내려져야 마땅하더라도 오래 참으면서 용서하시는 분이다. 시편은 용서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에서 수없는 용서를 보여주셨다. 주기도문과 비유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마 18:15∼35). 그는 용서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실천하셨다(마 9:2). 용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위한 필요조건이었다(고후 2:7). 크리스천들은 주님이 자신들을 용서한 것처럼 서로 용서해야 한다(골 3:13).
용서의 조건
그러나 용서는 분노와 미움, 복수심을 없애고 모든 피해를 잊어버리며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용서와 관련된 성경의 주제는 가해자와 그가 진 빚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용서에는 자백이 전제되며 자신의 죄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을 수 없다(요일 1:9∼10). 용서는 가해자의 회개를 전제로 한다.
프랑스 복음주의 신학교 보쉬센신학교 자크 뷔숄드 총장은 ‘완전한 자유, 용서’에서 “성경에서 가해자가 회개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는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종순 원로목사는 “죄는 악이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용서할 수 없다”며 “하나님도 죄를 긍정하지 않았다. 죄에 대해서는 사회적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는 이런 차원에서 사회 정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 당국은 범죄에 대해 형벌을 내리며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를 지킨다. 이는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의 경우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도 재판이 중단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진노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공의의 표현이다. 주님은 법을 사랑하시기에 불의와 강탈을 미워하신다. 로마서(2:5)는 이를 ‘진노의 날’로 표현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의 진노와 미움을 밖으로 표현하신다는 것이다.
용서는 어렵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면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이 용서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용서는 우리와 하나님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주는 기도의 조건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오직 용서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막 11:25).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원한을 가진 이들을 보복하지 않고 용서하려면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죄 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며 “피해를 입은 이는 자신의 상실과 아픔을 충분히 아파할 수 있도록 이웃과 교회 공동체가 함께 인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실을 애도하는 긴 여정
용서가 자유와 평화로 가는 열쇠라는 것은 알지만 그 길은 험난하다. 권 교수는 “용서는 한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상실을 지속적으로 애도하는 긴 여정”이라고 정의했다. 미 임상심리학자 워딩턴 에버렛 박사는 용서의 절차 ‘리치(REACH)’를 5단계(표 참조)로 설명했다. 이 이론은 스탠퍼드대팀의 실험을 포함해 최소 8가지 연구를 기반으로 정립됐다.
먼저 심호흡을 하고 사건을 되짚어본다. 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해본다. 다음 내게 피해를 준 이유가 무엇인지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가해자의 해명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3단계는 쉽지 않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게 베푸는 선물이다. 이 선물을 주기 위해 스스로 마음의 상처와 원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다짐해야 한다.
4단계는 공개적인 용서를 의미한다. 가해자에게 용서 편지를 보내거나 일기 시 노래로 용서를 표현해본다.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자신이 용서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일종의 ‘용서 약정서’다. 마지막 단계는 용서하는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역시 매우 어렵다. 직접 쓴 ‘용서 편지’ 등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다짐한다. 원한을 곱씹으며 얽매이기보다 기억에서 헤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신상목·강주화 기자 smshin@kmib.co.kr
[뉴스&이슈] 분노의 시대 ‘용서’는 살아있다
입력 2015-02-07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