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국채의 담보 인정을 중단하고 그리스 정부 압박에 나섰다. 이에 따라 그리스 시중은행들의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분위기도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ECB가 4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오는 11일부터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한 대출 승인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ECB는 “그리스 긴급구제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어 이같이 결정했다”면서 “현행 유로 시스템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 국채는 ‘투자부적격’ 평가를 받고 있지만 ECB는 그간 그리스 긴급구제를 위해 예외적으로 담보로 인정해 왔다.
ECB는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를 만나 채무 재협상을 논의한 후 갑작스럽게 이같이 발표했다. 더불어 그리스 정부가 제안한 재정증권 발행 한도 증액 요청도 거부했다. 앞서 그리스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하지 않고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재정증권 발행 한도를 현행 150억 유로(약 18조7000억원)에서 250억 유로로 늘려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리스 재무부는 “국채의 담보 인정을 중단하겠다는 ECB 결정은 그리스가 아닌 (채권을 갖고 있는) 유로그룹을 압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ECB의 조치가 그리스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중앙은행의 긴급유동성 지원(ELA)으로 시중은행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ECB의 강도 높은 압박에 최근 EU 회원국들의 잇단 ‘그리스 지원’ 발표로 긍정적 기류가 흐르던 국제 금융시장은 빠른 속도로 냉각됐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전날보다 한때 1.3%까지 떨어졌으며 그리스 정부가 이날 발행한 평균 금리 2.75%의 단기 재정증권 응찰률도 2006년 7월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번 재정증권 발행으로 6억2500만 유로를 끌어올 예정이었다.
다만 ECB 정책위원회는 전날 그리스 중앙은행이 요청한 50억 유로 규모의 ELA을 승인했다. 이는 구제금융과는 별개로 시중은행이 일시 자금난을 겪을 우려가 있을 때 그리스 중앙은행이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요청한 것이다.
한편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부채 상환을 위한 경제개혁 4개년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치프라스 총리는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서는 실행 가능한 협상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CB “그리스 국채 담보 인정 못한다”
입력 2015-02-06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