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사채왕’ 돈 받은 현직 판사 구속 기소… 무이자로 거액 빌리고 돈 갚자마자 현금 요구

입력 2015-02-06 02:09
검찰 수사를 받던 ‘명동 사채왕’으로부터 사건해결 청탁과 함께 억대 금품을 받아 구속된 수원지법 최민호(43·사법연수원 31기) 판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현직 판사가 비리 혐의로 기소돼 피고인 신분이 되기는 처음이다. 무이자로 거액을 빌렸던 최 판사는 채무 청산 이틀 만에 현금으로 절반을 되돌려 달라고 먼저 요구해 돈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는 5일 사채업자 최모(61·수감 중)씨로부터 “내가 얽힌 형사 사건들이 잘 해결되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의 부탁과 함께 2009년부터 총 2억6864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최 판사를 구속 기소했다. 마약·공갈 등 다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사채업자 최씨는 수사를 무마할 청탁 대상을 찾던 중 동향 지인의 조카인 최 판사를 발견하고 2008년 12월 친분을 맺었다. 이후 수시로 최씨의 돈을 받은 최 판사는 최씨 사건을 담당한 주임검사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고, 직접 사건기록을 넘겨받아 검토하기도 했다.

2009년 2월 최씨에게 무이자로 전세자금 3억원을 빌린 최 판사는 닷새 뒤 1억5000만원, 같은 해 9월 수표로 다시 1억5000만원을 전달하며 빚을 청산했다. 하지만 최 판사는 돈을 갚자마자 최씨에게 “1억5000만원을 현금으로 돌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 판사는 결국 채무 변제 이틀 뒤에 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최씨를 만나 현금 1억5000만원을 받아냈다. 최 판사는 2010년 3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을 온 최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2011년 12월에는 최씨가 “친분 과시로 민원이 제기돼 미안하다”는 뜻으로 최 판사에게 1억원을 더 건넸다. 최씨는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최 판사를 “부장판사로 있는 친동생”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 친분을 과시했다. 이 사실은 최씨와 사채거래 분쟁이 생긴 한 거래 상대방이 국민신문고와 청주지법에 진정을 넣으면서 최 판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진정서가 근무 중인 법원에도 접수되자 최 판사는 최씨에게 항의했고, 최씨가 다시 금품을 전달했다.

대법원은 최 판사가 기소된 직후 독립기구인 ‘법원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내놨다. 법관의 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조사가 이뤄지면 소속 법원장이 해당 법관을 재판업무에서 배제하도록 관련 예규를 개정할 방침이다. 소속 법원장에게 법관 비위 관련 사실조회, 서류제출 요구 권한을 주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이경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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