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복지 논란] “한국 高복지 시기상조… 中부담·中복지 바람직”

입력 2015-02-06 03:28 수정 2015-02-06 18:31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오래전에 형성됐다. 정치권의 폐기론이 오히려 때늦은 셈이다. 국민일보가 5일 실시한 전문가 긴급 설문조사에서도 20명의 응답자 전원이 증세 없는 복지는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왔다고 진단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논리에 입각해 복지 수요가 늘어나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부분에 대한 공감대도 높았다. 그러나 현재 복지 수준이 부족해 더 늘려야 할지 여부에 대한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다. 세금을 늘린다면 누구로부터 어떻게 더 받아낼지 등도 앞으로 논의해가야 할 어려운 문제로 지적됐다.

◇우리의 복지는 과한가?=정치권에서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이 무분별한 복지라며 ‘선별적 복지론’이 힘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는 1명에 불과했다. 고(高)복지와 중(中)복지 사이에 있다는 응답도 1명이었다. 전문가 대부분은 우리의 복지 수준이 낮거나(9명) 중간 정도(8명)라고 진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저 수준에 있는 우리의 복지를 ‘고복지’까지 높여야 한다는 의견은 높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부담·고복지’를 선택한 전문가는 4명에 불과한 반면 15명은 ‘중부담·중복지’나 ‘저부담·저복지’를 추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높은 복지에는 ‘고부담’이라는 전제가 깔리기 때문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낮은 조세부담률(20%)을 감안할 때 고복지까지 끌어올리기는 힘들다. 조세부담률을 미국 수준(22%)으로 올린다는 전제 하에 중복지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부담·중복지’에 동의하더라도 지금보다 세금을 높이거나 복지를 선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단은 증세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현재 경기는 침체되고 저성장 추세에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세금을 인상해도 보편적 복지로 가면 재정 적자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증세, 기업·부자·국민 전체…누구에게서 더 받아내나?=증세할 경우 어느 세목을 인상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법인세(9명), 부가가치세(7명) 등 기업이나 고소득자의 부담이 느는 세목이 주로 언급됐다. 소득세(6명)를 올려야 한다는 이들도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세목에 대한 의견은 각기 달랐지만 누구로부터 돈을 걷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는 이들은 우리나라의 법인세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여전히 올릴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법인세는 재산상 이득이 있으면서도 과세가 현저하게 덜 이뤄져온 세목”이라고 했고,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법인세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인세를 낮춘 적이 있는데 투자가 예상만큼 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원래대로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법인세를 올리면 물건값에 전가되거나 임금이 낮아지게 된다”며 법인세 인상의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

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세제를 개편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걱정했다. 부가세를 올리는 게 그나마 경제에 부담을 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황상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인세를 인상하게 되면 경제에 비효율성을 주고 장기적으로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부가세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부가세가 가장 비효율성이 적다”고 말했다.

전문직 등 고소득층에서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는 소득세를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소득세 쪽에서 전문직이나 자영업자의 세수 발굴이 안 되고 있다”며 “그쪽을 먼저 찾아내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조민영 김유나 기자, 세종=이용상 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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