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때마다 근로자들이 작성해야 하는 서류는 모두 4종이다. 핵심 서류인 소득·세액공제신청서에는 연금·저축 등 소득·세액 공제명세서, 월세·주택임차차입금 원리금 상환액 소득·세액공제 명세서가 딸려 있다. 별도로 의료비지급명세서, 기부금명세서,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모두 합하면 12쪽에 이른다. 여기에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출력한 서류와 주민등록등본, 원리금상환증명서 등 각종 증빙서류가 있는 경우에는 제출할 서류가 공책 한 권만큼 두꺼워진다.
연말정산 첨부서류 귀찮게 왜 내라고 할까?
이들 서류 가운데 실제로 국세청에 제출되는 서류는 단 한 개도 없다. 모두 원천징수의무자인 회사로 제출되는 것이다. 회사는 제출된 서류를 바탕으로 개별 근로자의 납부 세액과 공제 금액 및 환급·추가 부담 세액을 계산한 결과만 국세청으로 통보한다. 과다공제가 의심될 경우 등 국세청의 사후 검증에 대비해 제출된 서류는 회사가 보관한다. 따라서 대부분 서식들은 회사의 회계·경리 담당자들이 쉽게 계산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신용카드 사용액을 세 차례나 중복해 적는 것도 계산 편의 때문이다. 신용카드 사용액과 관련된 공제가 다양하고 계산식이 복잡하기 때문에 회사의 연말정산 담당자들이 사용금액 데이터를 보면서 계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의료비지급명세서와 기부금명세서를 제출하라고 하는 이유는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 포함되지 않는 내역이 많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매년 ‘조회되지 않는 의료비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모든 의료기관과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이 국세청에 자료를 제공한다면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출력되는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연말정산을 끝낼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는 말 그대로 ‘서비스’일 뿐”이라며 “연말정산은 근로자 본인의 책임으로 공제대상에 포함되는 항목을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는 영수증 발급기관이 국세청에 일괄적으로 자료를 넘기기 때문에 소득·세액 공제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일일이 국세청이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국세청의 입장이다. 현재 국세 전산망 수준으로는 국세청에 통보된 자료만으로는 정확한 연말정산이 이뤄질 수 없다.
연말정산 변천사-누가 공제해 달라고 했나?
1975년 12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첫 연말정산이 실시됐다. 종합소득세제가 이 해부터 시작돼 근로자 119만8000명이 대상이었다. 당시에는 요즘과 달리 12월에 연말정산이 실시됐다. 각종 공제항목도 10개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처음 시행되는 탓에 봉급쟁이들의 두려움은 컸다. 당시 한 언론은 ‘12월 근로자세금 엄청나게 늘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연말 보너스를 받는 등 급여가 늘거나 부양가족이 사망해 공제가 줄어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반대로 부양가족이 늘어나거나 주택자금공제 등을 매월 받지 않고 연말에 몰아서 받는 경우엔 환급금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당시엔 요즘처럼 ‘13월의 보너스’로 환급금을 지급하지 않고 다음달 내야 할 세금에서 차감하는 방식이었다.
1975년 이후 소득세법은 현행법까지 무려 117차례 개정됐다. 시행령은 196차례, 시행규칙은 104차례 손을 봤다. 현행 근로소득자 공제는 모두 28개 항목에 이른다. 이 복잡하고 다양한 공제는 상당 부분 정부와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세법 개정을 통해 신설되거나 사라졌다.
1974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 3호를 발동해 세액을 감면했다. 국제적 자원파동에 따른 물가 폭등에 대처해 국민생활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발령한 여타 긴급조치로 들끓는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1999년부터 도입된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는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파악해 탈세를 막기 위한 ‘과표 양성’ 차원에서 도입됐다. 당초 2002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도록 규정됐던 이 제도는 2016년까지로 일몰기한을 늘릴 때까지 무려 6차례나 연장됐다. 2000년 339만명이었던 부가가치세 신고납세자는 2009년 512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이 기간 동안 당초 목표했던 과표 양성화 효과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일몰기한이 다가올 때마다 정치권은 “서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다”는 이유를 대며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일몰을 연장했다.
이 제도는 소득공제의 혜택이 부유층에 편중되고, 거래비용이 가장 높은 신용카드로 결제수단이 편중된다는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현금영수증과 직불·체크카드로 눈을 돌렸고 2003년부터 직불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분의 공제한도를 늘리는 정책을 펼쳤다.
공무원들은 왜 연말정산 복잡한 줄 모르나?
공무원들도 연말정산을 하긴 한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연말정산이 복잡하다는 일반 근로자들의 원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첫 반응은 “클릭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다 입력되는데 뭐가 복잡하다는 것이냐”며 생뚱맞다는 표정을 짓는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국세청을 포함한 공무원들의 연말정산은 실제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2011년부터 전자파일 기반 연말정산을 하고 있다. 당시 행정안전부가 공무원 인사·급여 시스템인 ‘e-사람시스템’을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와 연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소득·세액공제 관련 서류를 전자파일로 내려받아 e-사람시스템에 첨부하면 돼 서류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인적공제에 변동이 있거나 간소화 서비스에 등록되지 않은 항목은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대기업과 은행 등 일부 사업장들도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자파일 기반의 연말정산을 실시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은 아직도 국세청 신고 서식에 따라 서류를 제출한다. 물론 이전처럼 신용카드 사용금액 확인서, 보험료 납입 증명서 등을 떼어서 첨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개통된 이후 부담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기입해야 하는 항목이 워낙 많고 복잡한 세법에 따라 계산할 내용도 많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국세청은 2010년부터 ‘종이 없는 연말정산’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중소기업은 추가 비용 발생 및 연말정산 프로그램과 호환성 문제 등을 이유로 도입을 꺼리고 있다. 무엇보다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자료가 공제 대상에 해당되는지를 근로자 개인이 점검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회계 담당자 입장에선 근로자들이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재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일처리를 두 번 해야 하는 불편이 따르기 때문이다.
연말정산 안 할 수는 없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벌어들인 소득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게 뭐가 어렵냐 싶지만 워낙 공제항목들이 많고 복잡해 지출에 따른 공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말정산이란 기본적으로 내야 하는 만큼만 세금을 내도록 사후에 보정하자는 취지다. 회사는 매월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급여에서 과세당국을 대신해 세금을 떼는 원천징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마다 공제항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급여수준과 가족 수별로 세율을 달리 적용하는 근로소득 간이세액표를 적용해 세금을 매긴다. 개략적으로 세금을 먼저 떼고 나중에 세밀하게 정산하는 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을 반영해 연말정산에서 실제 결정되는 세 부담은 원천징수세액과 다를 수 있다.
‘13월의 보너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야 할 금액보다 더 많이 낸 금액을 돌려받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세금 폭탄’ 또는 ‘토해낸다’고 표현하는 추가 납세액도 다달이 냈어야 하는 금액보다 적게 부담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돌려받건 토해내건 결국 세법에 따라 내야 할 금액만큼 내기 위해선 연말정산을 거쳐야 한다. 귀찮다고 연말정산 자체를 거부할 경우엔 기본공제 150만원과 표준세액공제 12만원만 적용된다. 부양가족 공제, 신용카드 공제 등 나머지 모든 소득·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연말정산을 했을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세금 폭탄’을 맞게 될 확률이 크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연말정산의 모든 것] 월급쟁이들, 매년 헤매는 그 ‘미로’
입력 2015-02-07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