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2시30분 전남 진도 팽목항에는 입춘(立春)을 비웃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봉사자들마저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는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가건물만이 휑뎅그렁하게 남아 있었다.
얼마 후 팽목항의 고요를 깨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 슬픔의 자리, 아픔의 자리, 한(恨)과 분노의 자리,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야 할 이 자리에 임재해 주옵소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세월호참사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이길수 목사의 기도였다. 짧은 입례찬송이 끝나자 이 목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오늘 슬픔과 아픔, 억울함과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모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벌써 296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남으로부터 슬픔과 아픔, 억울함과 분노의 마음을 위로받을 것입니다.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목사는 이날 NCCK 세월호참사대책위가 주최한 ‘온전한 세월호 인양과 실종자 수습 및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기도회’의 인도를 맡았다. 기도회는 세월호 가족들이 NCCK 세월호대책위를 초청한 것을 계기로 열렸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교계의 도움으로 지난달 6일 팽목항에 임시분향소가 설치되자 위로방문을 요청했다. 팽목항 임시분향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이 보낸 성금으로 만들어졌다. 기도회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30여명의 크리스천들이 참석했다.
기도회 참석자들은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간절히 올렸다. 정의평화기독인연대 한송이 국장은 “아직도 가족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9가족이 있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다”며 “제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 달라”고 간구했다.
NCCK 세월호참사대책위 위원장 이승열 목사는 “어떻게 우리가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을까. 그들과 마음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이곳을 찾았다”며 설교를 시작했다. 이 목사는 “사도 바울은 ‘예수의 생명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했다”며 “세월호 참사의 모든 진실이 규명되길 바라는 우리의 소망이 헛된 소망이 아니라 견고한 산 소망이라는 것을 확인해 나갔으면 한다”고 힘주어 전했다.
지금까지 팽목항에서 머물고 있는 세월호가족대책위 팽목항 담당 총무 김성훈씨의 증언시간도 마련됐다. 준비된 마이크 대신 육성으로 팽목항의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한 김 총무는 큰 한숨으로 말문을 열었다.
“제가 있던 텐트는 24시간 통곡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죠. 지금은 오히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고, 가족들이 회복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잊지 않고 이곳에 와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후 기도회 참석자들은 임시분향소를 찾아 헌화와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임시분향소에는 298명의 영정사진이 안치돼 있었다. 이후 아직 찾지 못한 9명의 실종자가 속히 돌아오길 바라는 내용의 기도문과 편지를 팽목항 방파제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었다.
진도=글·사진 진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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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9가족이… 위로·희망을 주소서”
입력 2015-02-06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