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의 위상을 감안하면 단박에 ‘총리=대권 후보’라는 공식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헌정사에서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된 사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박정희정권이 막을 내린 1979년 당시 국무총리였다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례가 있지만 대권을 쟁취했다고 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두 번이나 총리를 지내며 ‘실세 총리’였다는 평을 받는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에게는 ‘영원한 2인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3김(金) 시대’를 이끈 정치인 중 김 전 총재는 유일하게 총리를 지냈지만 3김 중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DJP연합’으로 ‘킹 메이커’ 역할을 하는 데 그쳤습니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총리로서의 능력도 대권과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안정감 있게 국정을 대행했던 고건 전 총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때 대권 후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했던 고 전 총리는 17대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새로운 대안정치 세력의 통합에 한계를 느꼈다”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총리를 지낸 정치인 중 대권에 가장 근접한 인사는 누가 뭐래도 ‘대쪽 판사’ 이회창 전 총리입니다. 헌법에 규정된 총리 권한을 요구하면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마찰을 빚던 이 전 총리는 4개월짜리 단명(短命) 총리로 물러나고 말았지만 국민적 인기는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두 번씩이나 대권을 손에 잡을 듯했던 그 역시도 장남의 병역 면제 논란 때문에 대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실세 총리로 떠올랐던 이해찬 전 총리 역시 3·1절 골프 파동으로 입은 내상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여권의 한 인사는 5일 “대통령과의 충돌을 불사할 각오까지 돼 있지 않고는 큰 꿈을 이루기 어려운 자리가 바로 국무총리”라고 말했습니다.김경택 기자
[슬로 뉴스] ‘실세 총리’마저도… 닿을 수 없었던 ‘대권’
입력 2015-02-06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