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라틀리프(25·울산 모비스)는 2012년 미주리대(콜롬비아 캠퍼스) 졸업 후 미국프로농구(NBA) 문을 두드렸다. 가난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준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NBA 드래프트에서 그의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실망한 그에게 에이전트는 “한국 리그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했다. 라틀리프는 한국프로농구연맹(KBL)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전체 6순위 지명권을 가진 모비스의 부름을 받았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진주’를 알아본 것이다.
한국에서 3시즌 째를 맞은 라틀리프가 탁월한 힘과 스피드로 코트를 휘저으며 ‘코리안 드림’을 일구고 있다.
라틀리프는 2012-2013 시즌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1라운드 10경기 중 5경기에서 한 자리 수 득점에 그쳤다. 마음을 다잡은 라틀리프는 2라운드 중반부터 기량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3년 1월 날벼락을 맞았다. 우승을 노리던 모비스가 창원 LG에서 뛰던 로드 벤슨을 영입한 것이다.
그래도 라틀리프는 긍정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 벤슨에게서 좋은 플레이를 배우려 했다. 자존심을 버린 라틀리프는 출전 시간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팀이 원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2012-2013 시즌 경기당 평균 15.11점, 2013-2014 시즌 10.41점에 그친 라틀리프는 이번 시즌에는 20점대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라틀리프는 지난해 8월 대만에서 열린 윌리엄존스컵 출전 이후 기량이 부쩍 늘었다. 모비스는 차포를 다 떼고 존스컵에 나섰다. 유재학 감독과 ‘야전 사령관’ 양동근은 국가 대표팀에 차출됐고 함지훈과 이대성은 부상으로 나가지 못했다. 벤슨도 불참했다. 센터로는 라틀리프가 유일했다. 라틀리프는 거의 매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8경기에서 평균 34분28초를 뛰며 24.3점, 15.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모비스는 라틀리프 맹활약 덕분에 우승했다. 라틀리프는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모비스 관계자는 5일 “라틀리프는 불고기, 된장찌개를 좋아할 정도로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며 “경기 때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엔 여유를 찾아 일대 일 공격과 미들슛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스피드가 워낙 좋아 상대 선수가 따라잡지 못해 헉헉거린다. 라틀리프 덕분에 우리 팀이 속공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봉도 10%씩 올랐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연봉 29만6450달러(3억2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가족은 그가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를 위해 고향 버지니아주에 새 집을 장만하기도 했다.
라틀리프는 “모비스는 NBA에 진출하지 못해 실망했던 나를 뽑아 준 팀”이라며 “두 시즌을 뛰면서 모두 우승을 경험했는데 이는 쉽게 누릴 수 없는 영광이다. 마지막 시즌도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한편 모비스는 5일 부산사직체육관 원정경기에서 라틀리프가 23점을 올리는 활약을 앞세워 부산 KT를 연장전 끝에 92대 91로 제압, 9일 만에 서울 SK와 함께 공동 선두에 올랐다.
김태현 기자
“NBA 못갔지만 ‘코리안 드림’ 이뤘어요”
입력 2015-02-06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