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김흥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

입력 2015-02-06 02:38

요즈음 나는 그랜트 웨커가 쓴 ‘미국의 목사: 빌리 그레이엄과 미국의 형성’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사실 그레이엄 하면 오늘날의 아이돌 스타와 같은 상업적 이미지를 풍긴다는 것과 주로 재벌들이나 권력자들, 유명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레이엄의 공과(功過)에 대해 매우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읽을 수 있었다.

그레이엄은 초창기부터 그 어떤 형태의 대규모 전도집회를 연다고 할지라도 ‘재정의 투명성’ ‘철저한 성도덕성’ ‘집회 결과에 대한 과장 금지’ ‘다른 목회자들에 대한 비판 자제’ 등 나름대로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왔다. 그의 신복음주의적 신학노선 역시 진보성향의 신학자들이 보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서의 권위에 대한 확신, 인간의 철저한 죄성,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은총, 도덕적 성결생활의 권고, 재림 등은 그레이엄이 일평생 강조했던 주제들이었다.

그레이엄의 설교신학이 심판과 사랑 사이의 균형과 긴장을 지속적으로 반영한다는 웨커의 해석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웨커는 이것을 “심판은 신학자의 머리에서 나왔지만, 사랑은 목회자의 가슴에서 나왔다”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복음전도 사역 초기에 그레이엄은 압도적으로 죄에 대한 질타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주제로 설교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성숙해질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더 큰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레이엄은 적어도 성서적으로 볼 때 동성애가 명백한 죄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동성애자가 교회 공동체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하고 성적 성향을 바꾸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동성애를 여러 많은 죄들 가운데 하나로 보았으며, 하나님이 동성애자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미국 ABC의 유명한 시사프로 ‘20/20’의 앵커맨 휴 다운스가 그레이엄이 동성애자를 사랑하는지 직설적으로 묻자 “물론이지요. 저는 정상인들보다 오히려 그런 이를 더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에이즈가 문란한 성도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다가 즉시 발언을 철회하는 성명서를 낸 적도 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에이즈로 심판하셨다는 저의 발언은 참으로 잘못되었고 가혹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웨커는 “무엇부터 먼저 염려해야 할지를 아는 것이 기독교적 지혜”라는 주석을 덧붙인다.

만년에 렘브란트가 그린 성화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시므온’이나 ‘탕자의 귀향’에는 지그시 반쯤 눈을 감은 노인이 나온다. “사랑에 눈멀다”는 말도 있듯이, 하나님의 눈먼 사랑을 형상화한 것이다.

동성애 안락사 자살 낙태 이혼 등등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설사 신학적인 머리로는 가타부타 판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겠지만, 좀 더 따뜻한 시선과 포근한 가슴으로 이 문제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신앙은 지적인 승인 그 이상의 마음, 아니 전 인격이 걸린 궁극적 관심의 문제다. 프레드 크래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했다. 사랑 없는 까닭에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운데,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은 여전히 멀고 지루하기만 하다.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김흥규 목사(내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