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종말을 얘기하는 사람들 말을 허투루 듣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구도 예외 없이 종말을 맞으며 하나님 심판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삶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들을 절박한 마음으로,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종말론적인 자세는 삶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자세는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줍니다. 사도 바울은 순간순간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합니다.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있고 없는 것, 슬프고 기쁜 것,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입니다. 아울러 무상한 것이며 헛된 것입니다. 이 같은 종말론적 자세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쩔 수 없어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래를 바라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어진 순간을 절실하게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것입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책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주인공은 학생들에게 “카르페디엠”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에 충실하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일에 몰두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도 바울의 카르페디엠은 많이 달랐습니다. 덧없는 이 세상에 몰두하기보다 주님께 몰두하는 것이었죠. 그는 헛되고 부질없는 것에 집착하는 대신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말을 세상과 그리스도 중 양자택일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지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는 주문입니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에 파묻혀 살아가면서 주님을 내 안의 중심에 모시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답변해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며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한계와 고민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자세는 종말론적 자세입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서 손 내밀고 있는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 나를 맡겨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선배인 마르틴 루터가 보여 준 것이며 우리의 주님이 보여 주신 일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여,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것입니다. 아멘.
박성완 목사 (옥수동루터교회)
[오늘의 설교] 종말론적 삶의 자세로 살자
입력 2015-02-06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