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르포] 우리는 아픕니다 그래서 모였습니다 이제 행복합니다

입력 2015-02-07 02:02
지난 2일 전남 보성군 복내면 천봉산 자락 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의 한가한 오후. 입소자들이 햇빛을 쬐며 손님을 배웅하는 이박행 목사(오른쪽)를 바라 보고 있다.
한 환우가 숙소 앞을 지나 예배당으로 향하고 있다.
중증 선교사 케어 문제를 의논하고 있는 선교사들.
1995년 설립된 센터 내 천봉산희년교회.
이박행 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 대표
석원제(52) 선교사는 전남 보성군 복내면 천봉산 자락에 거한다. 석 선교사는 중국 톈진, 시안, 선전, 난닝 등에서 15년간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는 지난해 8월 귀국해야 했다. 가슴 통증이 심상찮았기 때문이다. 건강검진 결과 그는 폐암 4기였다. 손쓸 상황이 지났던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지난 2일 석 선교사를 천봉산 아래 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대표 이박행 목사)에서 만났다. 마침 센터에서 3박4일 일정의 ‘제105회 복내 로하스 힐링 캠프’가 열리는 첫날이었다. 이 캠프는 현대의학과 자연치유요법을 통해 환우의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박행(53) 목사가 석 선교사를 소개했을 때 잠시 어리둥절했다. 프로그램에 초대된 강사 목사인 줄 알았다. 그만큼 건강해 보였다.

석 선교사는 지난해 9월 30일 이곳에 들어왔다.

“단 한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들어왔어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기도도 통증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다. 서울 유수 종합병원 의사가 그에게 “선교사님에게 맞는 치료약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란 얘기였다. “얼마만큼 살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3∼6개월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의사는 생명연장을 위한 입원을 권했다.

폐에서 퍼진 6.5㎝ 암 덩어리와 암세포는 위 척추 턱 등으로 진행됐다. 침샘이 말라갔고 미각을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목소리가 탁했다.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공동번역 엡 4:16)

그는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 하나님의 영양분을 먹고자 했다. 그리고 이곳을 택했다. 병원에서 죽어가며 사탄의 발톱에 24시간 긁히는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저는 여기 들어온 지 10일 만에 1시간 코스의 길을 산책하게 됐어요. 지팡이 짚고서 말이죠.”



사탄의 발톱에 긁히는 고통 당하느니…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발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교계가 세계 각국에 파견한 선교사는 2만6677명이다. 그런데 이 많은 선교사들의 건강 관련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선교사들의 자세가 ‘(하나님 말씀 전도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여기는 의식이 약하다. 때문에 석 선교사와 같이 병마를 얻어 중도 귀국해 투병 생활하고 있는 선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대 교단 예장합동의 해외선교 기관인 GMS(예장합동총회세계선교회)가 지난해 일시 귀국한 726명을 대상으로 귀국 사유를 물은 결과 100명이 ‘질병 때문’이라고 답해 어림짐작하는 정도다. 가벼운 질병이야 다시 회복하고 돌아가면 되지만 암과 같은 중증 질병은 ‘기름 부음 받은 사도와 그 가족’을 실족케 하는 일이다.

이박행 목사는 1995년부터 이곳 복내에서 중증 환우 케어를 시작했다. 그 가운데 만나는 선교사들의 안타까운 삶은 늘 기도제목이었다. 그는 중증 선교사들을 위한 돌봄(care)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리고 딱 20년 만에 ‘중증 선교사 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중증 선교사 환우에겐 일반 환우와 다른 치유 시스템이 적용된다. 수십년간 선교사 생활을 해온 그들과 그 가족에겐 그들만의 정서와 동선, 말씀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일 시작된 케어 시스템 적용 환우는 4∼5명이다. 선교사 가족을 포함한 인원수다. 이 목사는 이들에게 경제적 형편에 맞게 능력껏 기부케 하는 한편 협력 병원과 연계해서 무료 검진 및 치료를 돕고 있다. 선교 동료와 서로 고충을 나누고 통합선교에 대한 비전을 얘기하는 것도 당장 보이지 않는 하나님 방법의 정서적 치유다.

영성 그리고 깨끗한 물 공기 음식

전인치유, 즉 하나님 방법은 환우 가족에게 ‘눈으로 확인’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들어가 영성과 현대의학이 곁들여진 치유 과정에 놓인 내 가족이 과연 호전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다.

석 선교사는 이번 105회 힐링 캠프를 너끈히 아니 즐겁게 수료했다. ‘생활 속의 대체 의학’ ‘예배’ ‘건강을 지키는 영양요법’ ‘암 재활운동’ ‘숲&웃음 치유’ ‘춤·명상’ ‘내적 치유 및 영성으로의 초대’ ‘전인건강체조 및 발목 펌프’ ‘선교사의 건강관리 특강’ 등이 이어졌었다.

그는 “깨끗한 물, 공기, 음식이 면역력 회복을 도왔고 무엇보다 예배·묵상 등으로 이어지는 생활이 하루 세 차례 산책을 가능하게 했으며 미각도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무엇이 건강을 해친 것 같으냐’는 질문엔 ‘스트레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낯선 환경에 떨어진 선교사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2일 밤 환우 선교사의 쾌유를 위한 예배가 별도로 이뤄졌다. 배점선(58) 불가리아 선교사, 모희원(가명·57) 사회주의권 선교사, 최광식(52) 인도네시아 선교사, 김경열(52) 남아공선교사, 고종원(52) 제주세계선교훈련센터 간사 등이 함께한 자리였다. 이경준 이랜드복지재단 이사장, 정재철 아시아미션 대표는 중증 케어가 필요한 선교사 실태를 듣고자 일부러 참석했다.

최 선교사는 사모가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나 또한 ‘건강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지혜롭지 못한 태도였다”며 “선교 현장이란 먹고 마시는 것이 열악하고 무엇보다 현지인과의 갈등 등은 몸 안에 누적되는 스트레스를 낳는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선교 19년차인 그는 “여성의 지위가 낮은 이슬람권 선교지에서 생활한 아내의 스트레스는 내가 겪는 것 이상 혹독했을 것”이라며 “우리들을 위한 이런 프로그램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모국어로 말할 기회가 없는 우리에게 순회 선교사의 방문은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한다”며 오지 선교사의 모국어 갈증을 얘기하기도 했다.

배 선교사는 24년차다. 지난해 현지 교통사고로 회복 중에 있다. 그는 “선교사 가정은 늘 질병과 사고의 위험에 놓여 있기 마련”이라며 “특히 사모 등이 감당해야 할 몫이 커 중증 질병의 빈도가 남편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최근 남아공 빈민촌 사역 현장을 소개한 책 ‘냄새나는 예수’(홍성사)를 펴낸 김 선교사는 “선교사들은 주님을 향한 자신의 의지만으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걸로 믿고 자기 관리에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며 “선교사가 자신을 돌보는 것은 결코 죄짓는 일이 아니므로 성경적 의학에 기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암이 내 영혼 엄습할지라도 당신이 주신…

남해 바다를 끼고 있는 보성은 2월초였지만 따뜻했다. 산기슭 양지쪽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석 선교사를 비롯한 40여명의 환우들은 고급 펜션과 같은 안식처에서 산책과 예배를 번갈아 하며 자신을 돌봤다. 대학 교수 출신으로 30대 후반 늦은 나이에 전도사가 됐다는 한 환우는 “비록 대장암이 내 영혼을 엄습할지라도 당신께서 주신 바람과 물과 깨끗한 음식을 방패삼아 이겨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천봉산희년교회를 중심으로 한 복내치유선교센터는 ‘환자가 환자 같지 않았다’. 그만큼 밝고 건강한 육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4기 이상의 중증 암 환자였다. 얼굴에 윤기가 흘렀고 늘 감사의 언어를 썼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을 건네는 그들의 표정에서 성령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이들의 행복을 알 수 있었다.

석 선교사가 말했다.

“영과 육이 해독되면 사역지로 나가야죠. 사랑받는 세포가 암을 이긴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 061-853-7310).”

이박행 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 대표

청소년과 청년 시절 신장염과 만성간염으로 투병생활을 했었다. 전남대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투병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20, 30대 교역자 시절 김진홍 목사 등과 함께 ‘두레연구원’ ‘두레학숙’ 실무책임자로 사역했으며 투병 경험을 교훈 삼아 ‘전인건강운동연합’을 발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역은 간질환 재발을 불러 요양원 등을 전전했다. 그리고 1995년 천봉산희년교회 설립을 계기로 전인치유에 전념하게 된다.

이 센터는 교회, 친환경 숙소와 식당, 생태공원 등을 갖추고 있으며 향후 통합의학센터와 대안학교 등을 갖춘 공동체마을을 지향하고 있다. 이 목사는 그간의 전인치유사역을 아내 최금옥 사모와 함께 ‘전인치유목회 이야기’ ‘복내마을 이야기’ ‘암을 이기는 복내영양요법’(홍성사)이란 책으로 남겼다.

보성=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