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남자도 아니야!” 약속시간 30분 늦게 도착한 남자에게 정면으로 퍼부은 한마디 탓에 남자는 뒤돌아섰다. 갑자기 강의시간이 길어져 이삿짐 트럭을 타고 땀 흘리며 들어온 남자는 거칠고 참을성 없는 여자 성격에 마음이 식었나보다. 그렇게 돌아서버리니 그 남자가 싫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졌다. 그 뒤로 몇 번 전화를 해도, 집으로 찾아가도 만남을 거절당해서 나는 고민 끝에 친구를 보내 사과를 대신 하고 제발 한번 만나주라는 부탁도 해 달라고 했었다. 그것을 대리사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니 벌써 50년 전의 일이다.
요즘은 청소 벌초 심부름까지 해주는 대행업체가 성행을 한다고 하는데 바쁜 사람에게는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듣자하니 잘못했다는 “사과”를 대신 해 주기도 하고 놀라운 것은 “효도”도 해주는 대행업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루에 한번 문자를 넣어드리고 음식 배달이며 함께 술 마시기, 지압이며 산책할 때 함께 가기 등이 그것이다. 물론 프러포즈도 해 준다. 이러다가 신혼여행을 가 주는 대행업무도 생길지 모른다. 또 하나 있다. 헤어지자는 통보를 하는 대행업무도 있다.
나는 좀 당혹스럽다.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과를 하거나 그것은 본인이 아니면 사실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영 쑥스러워서 도저히 할 수 없어 대행업무로 자신이 빠져버리면 그게 감정 전달이 되는 일일까. 특히 효도를 남의 손으로 대행하면 효도가 되는 것일까. 안 하는 것보다 좋다라고 할 수 있으나 개운하지 않다. 사랑이란 함께 있는 것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마음이 사랑 고백도 사과도 효도도 가능한 것이라면 인간의 본성조차 싹둑 자르는 이런 대행은 좀 무서운 세상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데 더 깊은 겨울의 혹한으로 사람들 마음이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춥다. 따뜻한 마음에 움 돋는 진심이 전해지는 봄의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그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감정대행
입력 2015-02-0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