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국민 원하면 세금 올릴 수 있다”… 정치권에 공 넘겨

입력 2015-02-05 02:30 수정 2015-02-05 09:35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증세 없는 복지’와 관련해 의원들의 질타를 받으며 이마를 만지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견고했던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에 금이 갔다. 믿었던 여당의 ‘배신’에 정부도 증세 불가론에서 한 발 물러서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단서 아래 못할 것도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러면서 작심한 듯 공을 정치권으로 넘겼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연말정산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고복지-고부담, 중복지-중부담, 저복지-저부담 등 복지에 대한 생각이 여당, 야당, 국민 모두 다르다”면서 “국회에서 복지와 증세에 대해 합의하면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치권의 여야가 합의하고 국민이 원하면 세금을 올릴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도 했다.

최 부총리는 구체적으로 국회에 적정한 복지수준과 이에 따른 증세 여부를 포함해 재원조달 수단에 대해서도 논의해줄 것을 요구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은 정부가 증세 없이 높은 수준의 복지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집권 1년차인 2013년 공약가계부를 통해 135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무상보육 등 높은 수준의 복지를 이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연말정산 파동을 불러일으킨 ‘꼼수 증세’ 논란에서 보듯 사실상 국민의 추가 부담 없이 복지공약을 이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한 공약가계부 재원 마련은 3년 연속 ‘세수 펑크’ 사태에 사실상 물 건너갔다.

물론 정부로선 아직까지 증세 없는 복지를 고수하고 있는 청와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를 감안한 듯 최 부총리는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현재는 그 마지막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증세 논의를 야당이 요구하는 ‘부자 증세’와 거리를 두겠다는 심산이다. 증세를 하더라도 복지 증대를 위한 증세를 하는 것이지, 야당의 주장대로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 부담을 늘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 부총리는 이날 현 정부에서 서민 증세가 이뤄졌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을 증세라고 본다”며 이를 부인했다.

향후 국회 논의가 증세를 하는 쪽으로 이뤄질지가 관심이다. 한번 줄어든 복지혜택을 다시 뺏기가 힘들다는 점, 복지공약 철회 부담 등을 감안할 때 고복지-고부담 시스템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증세의 판도라상자가 열린 셈”이라며 “우선은 복지 수준 및 증세 수단에 대한 여야의 논의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가 복지 축소와 증세로 맞서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념논쟁으로까지 비화할 경우 지루한 공방만 오갈 수 있다. 결국 아무런 진척이 없는 ‘증세 물타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세종=이성규 윤성민 기자 zhibago@kmib.co.kr

▶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