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례(60) 시인. 그에겐 '시인 박완서'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35세 늦깎이로 등단해 현대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석권하며 문단의 인정을 받고 있는 점이 닮았다. 작품 주제 또한 그렇다. 신작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창비)에는 박완서 선생의 작품 세계를 지배했던, 일상의 발견이 있다. '중산층의 항변' '사회에 대한 분노'가 흐른다.
최 시인을 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1층 카페에서 만났다. 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지난해 말 스웨덴에서 3개월 머물렀던 경험을 얘기하는 그는 “‘여긴 네가 하고 싶은 걸 도와주는 나라야’라는 말을 수시로 들으며 눈물이 날 뻔 했다”며 “(한국이) 뭘 하려고 하면 자격부터 묻고, 사회 구조 때문인데도 내 탓 만하게 하는 나라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시도 산문도 아닌 산문시로 채워졌다.
“짧은 시로는 해소되지 않는 욕구들이 있어요. 내 말을 들어 달라. 왜 안 들어 주냐고 말하고 싶은 거지요.”
신작 시집에는 ‘몰락한 중산층’이라는 그가 일상에서 만나는 부조리와 모순들, 그것들로 인해 솟구치는 사회적 분노가 넘친다. 대학 강사 대 교수, 여성 대 남성 등 사회적 약자로서 그가 부딪치는 권력에 대한 항변이 메아리친다.
‘아줌마, 시간 끌지 말고 타협하시지. 에이 씨, 바빠 죽겠는데, 아줌마, 각자 자기 차 자기가 고치도록 하자구. (중략) 내가 겨우 한 말이라는 게 아저씨, 목소리 크면 다예요? 겨우 그 말 뿐이라는 게 한심했다.(중략) 이 모든 게(중략)강사료 적게 주려고 시험 볼거냐, 강의할거냐 묻던 그 거만한 교학과 직원 때문이야’(‘검은 눈구멍’)
산문이 아니라 산문시인 건 이야기가 직진하지 않고 서로 다른 사건과 사건, 정황과 정황 등이 같은 시 안에서 병치되거나 우회하며 시적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확실히 젊은층의 시와 다르다. 그는 30대, 40대 후배를 ‘레고놀이 세대’라 정의하며 “그들은 시를 쓸 때 단어나 문장의 성분을 레고 조각처럼 넣었다 뺐다 하며 언어적 유희를 할 수 있다. 인형놀이, 소꿉놀이를 한 내 세대는 뇌구조가 다르다. 서사에 강하고 문장의 의미를 갖고 놀게 된다”고 분석했다. 가장 긴 산문시는 3부 ‘있음과 있었음의 사이에서’다. 무려 원고지 60매. ‘나는 더러운 쓰레기와 함께 개천에 버려진 오물이었다. 핏덩이였다. (중략) 당신들은 그것들을 죽인다고 말하지 않는다. 버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이 지워졌다고 믿었다.’
가족의 경험도 중요한 소재다. ‘무슨 심청이라고 내일이면 요양원으로 가는 부친을 위해 샤워꼭지에 내 얼굴을 대놓고 흘러내리게 하나’라고 자조하는 그녀는 ‘여름에는 노인들이 잘 안 죽어요. 이 업종에도 비수기가 있어요’라며 주검을 계산하는 장례식장의 상업성에 경악하기도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삶이 주는 무게에 뒤늦게 뛰어든 시작(詩作). ‘어떤 시는 오래 공들여도 거기서 거기다’라고 겸손해하지만,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개천은 용의 홈타운’) 용의 기세가 시 정신을 관통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산문시에 녹인 사회적 분노·항변
입력 2015-02-06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