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어느 날 이른 새벽,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250㎞ 떨어진 오지의 탄센병원 입구. 수십명의 환자들이 담요와 목도리로 몸을 감싼 채 진료를 받으려고 길게 줄지어 앉아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환자 행렬을 지켜본 김정인(88) 여사의 반응은 이랬다.
“꼭 6·25 전쟁 때 부산 메리놀병원을 보는 것 같구나. 그때 병원 앞도 꼭 이런 풍경이었거든. 이제 우리가 그때 받은 사랑의 빚을 갚아야 안 되겠나. 우리 아들이 여기서 이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다니 정말 자랑스럽구나.”
아들 내외인 양승봉(58) 신경희(55) 선교사를 네팔 의료선교사로 떠나보낸 지 1년 만에 사역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김 여사는 아직도 그날의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는 20년째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미수(米壽)인 지금까지도 새벽마다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세계 최빈국 네팔에 이어 2013년 하반기부터 베트남에서 의료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양 선교사 부부를 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내려놓음, 새 사역지가 나타나다
2008년 초 업무 차 잠깐 귀국했을 때 인터뷰를 한 지 7년 만에 다시 마주한 부부의 목에는 각각 수술자국이 나 있었다. 양 선교사에게는 목 디스크 수술을 받은 흉터, 신 선교사에게는 목 안쪽 혀 부위에 혹(설갑상선 낭종)이 발견돼 수술받은 뒤 생긴 일(一)자 흉터 2개가 선명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음을 직감케 했다.
양 선교사 부부는 2009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네팔에서 일시 귀국했다. 현지의 척박한 기후와 생활환경 탓에 심신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던 때였다. 하지만 다시 네팔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네팔 의료보험 제도 도입에 대한 남다른 애착 때문이었다. 양 선교사는 네팔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최초로 주창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빈민 환자들을 접하면서 의료보험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집에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중병에 걸리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돈이 없어 병을 더 악화시키거나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재산 목록 1호인 물소를 몇 마리씩 내다 팔아야 하거든요.”
양 선교사는 2007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등에 제안해 의료보험제도 연구세미나 등을 펼치면서 국제NGO들과 네팔 당국 등에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꾸준히 알렸다. 그 결과, 코이카가 네팔의료보험 타당성 조사(2011∼2012)를 실시한 데 이어 네팔 정부도 2013년부터 3개 군을 대상으로 광역의료보험 시범 사업을 실시 중이다. 수년 전만해도 네팔 보건인구부의 한 부서 소관사항이었던 의료보험 관련 업무는 지금 보건인구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한 ‘국가의료보험위원회’가 총괄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졌다. 8년 전 외국인 의료선교사 한 명이 뿌린 씨앗이 값진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2012년 2월, 목 디스크 수술을 마친 양 선교사는 서둘러 네팔 행을 준비했다. 그런데 신 선교사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설갑상선 낭종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는데, 부작용이 나타났다. 병원에 더 머물면서 네팔 행은 자꾸 미뤄졌다. 양 선교사는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막아주신 것”이라며 “네팔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메시지 같았다”고 고백했다.
베트남에서 새로운 사명을 찾다
그 무렵, 양 선교사는 후배 치과의사로부터 베트남에 단기 의료봉사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저는 네팔(같은 오지)만 선교지인 줄 알았거든요. 다른 곳은 내가 갈 선교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베트남 현지에 답사를 다녀온 뒤 이곳도 우리가 섬길 수 있는 사역지라는 걸 깨달았어요.”(양 선교사)
양 선교사가 사역하는 롱안세계로병원(원장 우석정)은 올해로 개원 10년째인 베트남 유일의 선교병원이다. 현지 고엽제 환자와 불우 계층, 주민과 교민 등이 주된 사역 대상이다. 양 선교사는 2013년 11월부터 파트타임으로 사역을 하다 지난해 10월부터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부원장직까지 겸하고 있다.
롱안세계로병원의 하루 평균 외래환자는 100명 선, 수술은 하루 1∼2건(1년 400건 안팎) 정도다. 의료보험 가입율도 63% 정도다. 하루 평균 외래 환자 400명, 1년 수술 건수만 9000건이 넘는 네팔 병원 시절과 비교하면 한가할 수 있다. 하지만 양 선교사는 “또 다른 사명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20년차 선교사 부부의 꿈
양 선교사는 복음화율 1.5%인 베트남에서 ‘비즈니스선교(BAM·Business as Mission)’와 디아스포라 교회들의 선교사역 지원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베트남에만 10만 명의 교민과 4000곳 넘는 한국 업체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이들을 섬기고 한인교회들을 선교 동역화하는 것이야말로 침체된 해외선교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롱안세계로병원의 경우, 라오스의 제2도시인 사바나켓에 이동 진료소 개설을 준비 중이다. 현재 최대 현안인 이동진료차량을 구하기 위한 방안을 찾으며 기도 중이다.
양 선교사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나 스스로 무슨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다고 해서 일이 진행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제 눈앞에 보이는 구멍들을 메우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네팔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 있던 신 선교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희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저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20년째 한 길을 걸어온 선교사 부부의 꿈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미션&피플] 양승봉·신경희 선교사 부부의 ‘나의 삶 나의 신앙’
입력 2015-02-05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