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어느 칠흑 같은 밤, 나이지리아의 초원을 달리는 트럭에서 두 소녀가 힘껏 뛰어내렸다. 아사베와 루스라는 이름의 소녀들은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피랍된 219명의 친구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맨발로 힘겹게 마을로 돌아왔다. 이들처럼 보코하람 몰래 피랍지에서 빠져나온 학생은 57명이나 됐지만 이들에게 돌아갈 학교는 없었다. ‘서양식 교육은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하는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북동부 지역의 여학교를 모두 폐허로 만들어 놓았다. 의사 간호사 교사 등의 꿈을 뒤로한 채 여학생들은 집에서 숨죽이고 지내야 했다.
그러나 아사베와 루스는 요즘 다시 학교에 나가고 있다. 조용히 숨어 살던 이들이 다시 학교를 가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 8월 한 여성 활동가를 만나면서부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일(현지시간) 보코하람에 대한 ‘조용한 반란’을 이끈 이 20대 여성 활동가를 소개했다. 보코하람의 보복 우려 때문에 고디야란 성만 밝힌 그녀는 보코하람에 납치됐다가 돌아온 동생들 때문에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보코하람이 다시 이곳을 습격하면 소녀들을 학교로 보낸 내가 첫 번째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동부 보르노주 치복에서 경찰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비극적인 장면’들을 접해야 했다. 2004년 아버지가 일하는 경찰서에 무장괴한이 들이닥쳐 동료 경찰 4명이 숨졌다. 아버지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2009년에는 마을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져 이웃 1명이 즉사하고 그녀의 손에도 파편이 박혔다. 계속되는 불안에 그녀의 가족들은 고향을 떠날 계획을 세웠지만 지난해 돌연 보코하람에 그녀의 동생들이 납치되면서 계획은 산산조각 났다.
인근 아데마와주의 주도 욜라 인근의 나이지리아 아메리칸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고디야는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동생들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직접 이 학교의 마르지 엔신 학장을 찾아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고디야의 뜻에 공감했던 엔신 학장은 모금 활동을 시작했고 전 세계에서 약 5만 달러(5482만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더 많은 소녀들을 학교로 보내기 위해 고디야는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수백㎞ 떨어진 치복을 찾아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여학생들의 가족을 설득했다.
하지만 대부분 보코하람의 보복을 두려워해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주민들을 돌보게끔 파견한 심리학자 2명을 매복해있던 보코하람 대원들이 무참히 참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었다.
엔신 학장도 직접 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엔신 학장 앞으로 11명의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나타났다. 가족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로 한 이상 우리도 이곳에 살 수 없다”며 함께 마을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의사를 꿈꾸는 소녀 마거릿은 “학교를 졸업하면 뭘 하고 싶니?”란 물음에 “물도 부족하고 전기도 끊긴 고향으로 돌아가서 주민들을 돕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직 보코하람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고디야는 “위험을 감수하고 시작한 일”이라며 “어떤 상황이 오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女교육 억압’ 보코하람에 반기 든 소녀들
입력 2015-02-05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