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입력 2015-02-05 02:34
대법관 후보로 임명 제청된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의 과거 이력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987년 서울지검 검사 재직 당시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에서 활동한 적이 있음에도 국회에 제출한 대법관 임명동의안에는 이 내용이 누락됐기 때문이다. 전날 야권이 박 후보자의 고의 누락 의혹이 있다며 자진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서울지방변호사회와 시민단체들이 4일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대법관 임명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임명동의안에 자신이 맡았던 사건을 일일이 기재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수사 경력은 기재하는 게 상식적이다. 뭔가 떳떳하지 못해 빼버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특히 박종철 고문치사는 우리나라 민주화 항쟁의 분기점이 된 사건이라서 수사팀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게 맞다. 당시 경찰이 서울대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가해 숨지게 했음에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은폐·조작한 사건 아닌가. 검찰 또한 권력의 외압에 굴복해 사건을 축소하려 한 오욕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박 후보자의 사건 기재 누락은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당시 1·2차 수사에 모두 참여한 박 후보자가 수사팀의 말석 검사로 있어 고위층의 사건 축소 의도를 몰랐을 수도 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벌어진 근 30년 전의 일을 갖고 문제 삼는 게 지나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책임을 방기하고 스스로의 부끄러운 행동을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는 박 후보자는 대법관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정의를 수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대법관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박 후보자는 이날 고의 누락을 부인하는 자료를 내고 “당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11일 청문회 과정에서 수사검사로서 담당했던 역할에 관해 좀 더 명확한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그런 것에 앞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투명한 인선과 면밀한 사전검증 시스템이 작동됐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