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주관한 지난달 27일 광주 혁신센터 출범식에서 정몽구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안내하며 설명했다. 정 회장은 앞서 두 번이나 현장을 방문해 진행 상황을 사전 점검했다.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이 혁신센터 출범식 행사를 위해 한 달에 세 차례나 현장을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 대통령이 가장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창조경제의 상징적 사업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2015∼2018년 4년간 80조7000억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 해 20조원이 넘는 투자 규모다. 선도적 미래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 800만대 판매 달성 이후 성장세를 유지하며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한 투자였다. 세계적 불황이 계속되는 와중에 다른 그룹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규모였다. 현대차그룹의 ‘통 큰 투자’가 기업들의 투자를 호소·압박하는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현대차그룹은 또 지난해 2010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현금배당을 전년보다 54%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주주 가치를 높이고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 배당 강화였다. 내수 경기 활성화 역시 박근혜정부가 목을 매고 있는 정책 중 하나다. 앞서 한전부지 매입과 신사옥 건설에서도 현대차그룹은 통 큰 행보를 선보였다. 10조5500억원의 부지 매입과 국내 최고층인 115층 건설계획 등은 발표될 때마다 주변을 놀라게 했다.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정부 정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계속되자 재계 안팎에서는 ‘정부와 현대차그룹의 밀월’이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4일 “외부에서 보기에 현대차그룹이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은 틀림없다”며 “현대차의 발 빠른 행보에 놀랍다는 반응들이 많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의 움직임이 정부를 향한 ‘무언의 신호’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정의선 부회장 승계에 대비한 사전정지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정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이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 등의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거론된다. 지난달 정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 시도가 주목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합병이나 매각 모두 정부의 협조가 어느 정도 필요한 절차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해석을 “억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81조원 투자는 그룹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이고 한전부지 매입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그룹의 오랜 숙원이었으며, 광주 혁신센터는 우리나라 주요 그룹이 모두 참여하는 사업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룹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800만대 판매를 넘어 자동차 글로벌 빅3가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며, 배당 확대 역시 시장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며 “다른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지난 정부 시절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밀월 얘기가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현대차가 특혜를 얻은 게 없었다”며 “선두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
정몽구, 불황속 통큰 행보… 재계가 놀랐다
입력 2015-02-05 03:39